이상조 다락방의 불빛 대표·카페 컨설턴트

[동양일보]커피를 사랑한 음악가들이 많지만 ‘Bach(바흐)’, ‘Beethoven(베토벤)’, ‘Brahms(브람스)’ 이렇게 세 명이 유독 커피를 지독히도 사랑해서 3B라고도 부른다. 그중에서 베토벤은 매번 커피 원두 60알을 세어서 커피를 내려 마셨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60’을 베토벤 넘버라고 부르기도 한다.

손님이라도 와서 커피를 대접해야 할 때면 방문객의 수대로 60알의 원두를 세어야 했는데, 가끔은 재검까지 했다고 하니 참으로 번거로운 일이었을 것 같다. 베토벤은 거지로 오해를 받은 적이 있을 정도로 외모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전해지는데 왜 커피를 마실 때는 원두의 숫자에 그토록 집착했을까?

지인들이 남긴 저술에 의하면 베토벤은 자신이 커피를 내리는 방식이 ‘동양적’이라고 자주 표현했다고 하는데 혹시 60갑자의 의미를 담았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아무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저 여러 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60알로 커피를 내렸을 때 가장 맛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핸드드립 커피 한 잔을 내리기 위해 필요한 원두의 양은 얼마일까?

2016년의 한 설문에서는 최소 7g에서 최대 50g까지로 나타났으며 평균은 20g 정도였다.

필자는 갑자기 원두 60알이 몇 그램이나 될까 궁금해져서 직접 세어서 저울에 달아보았는데,

7g이었다. 원두의 크기에 따라서 약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10g이 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베토벤은 굉장히 연하게 커피를 즐겼던 것이다.

베토벤이 가난하게 지냈다는 것을 우리는 기록을 통해서 알 수가 있는데, 어려운 형편에도 당시 고가이던 커피를 매일 즐겼다는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커피를 사랑했는지 알 수 있다. 베토벤은 수입이 생기면 우선 한 달 마실 커피값을 빼놓고 나머지 자금 계획을 세웠을 정도였고 커피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나의 아침 식사에는 내 벗이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 나의 벗인 커피를 빼놓고서는 어떠한 것도 좋을 수가 없다. 커피 한 잔을 만드는 원두 60알은 나에게 60가지 영감을 준다.”

그가 작곡한 수많은 명곡들에 커피가 주는 영감이 포함되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자주 듣던 음악인데도 오늘따라 특별하게 느껴진다.

필자는 아르투르 그뤼미오가 연주한 베토벤 로망스 2번(F장조 Op. 50)을 좋아한다.

보통 음악에서 로망스라고 하면 낭만적이면서도 시적인 정취를 지닌 자유로운 형식의 곡을 말하는데, 베토벤은 총 2곡의 로망스를 남겼다. 1번이 남성적이고 위엄이 있으면서도 차분하다면, 2번은 서정적이고 아름답다.

로망스 2번이 시작되면 섬세하고 서정적인 소리가 가녀린 바이올린 선율에 실려 나온다. 그 뒤를 따르는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예전에 어떤 음악 마니아는 역사상 모든 음악 중에서 300장의 음반만을 골라 평생을 듣고 나머지 음악은 듣지도 않았다는데, 그분의 목록에도 베토벤 로망스가 있었다고 하니 누구라도 한 번은 들어볼 만한 곡이리라.

베토벤과 커피와 로망스, 이 얼마나 멋진 조합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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