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조 다락방의 불빛 대표·카페 컨설턴트
[동양일보]수십 년 전만 해도 잠시 시간이 나면 이웃집에 찾아가서 툇마루나 마당에 있는 평상에 사람들이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시절이 있었다. 요즈음은 대부분의 주택이 문을 열면 바로 거주 공간이 나오고, 마당이나 툇마루 같은 완충공간이 없어서 외부인을 집안에 들이기가 어려워진 측면이 있는 것 같다.
한편, 어릴 때 기억을 되살려보면 친구를 만나기 위해 집으로 찾아가기도 하고, 공원 벤치나, 학교 운동장 같은 곳에서 약속을 잡아 만나기도 했는데, 이때만 해도 친구나 회사 동료, 지인을 집안에 들이는 일이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 점점 개인 공간에 타인을 들이는 것을 꺼리는 사회로 변해가더니 지금은 각종 잔치도 외부에서 하고 집들이라는 문화도 거의 사라진 것 같다.
그런데 근자에 이르러서는 카페가 개인과 개인 공간들 사이의 완충지대 역할을 하고 있다.
카페가 음·식료업이 아니고 ‘초단기 부동산 임대업’에 가깝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카페는 도시에서 숲이나 운동장, 마당의 평상, 툇마루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이런 점들은 간과하고 카페를 이야기할 때 커피에 함유된 카페인의 기능적인 측면만을 강조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뇌가 우리 몸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 정도인데, 뇌는 우리 몸에서 하루에 사용하는 전체 에너지의 20% 이상을 소비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뇌가 엄청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에너지가 부족하거나 뇌가 과부하인 상태가 되면 뇌에서는 ‘아데노신’이라는 물질을 분비해서 몸이 피곤하다고 느끼게 되고 수면을 유도하는 작용을 하는데, 카페인은 아데노신의 이러한 기능을 막아 준다. 결국 뇌는 피곤하지 않다고 느껴 계속 일을 하게 되는데, 이것은 커피가 뇌를 속여 과로하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쉬고 싶을 때 쉬고, 일하고 싶을 때 일할 수 있던 사람이 얼마나 되었겠나? 현대 사회에서는 그나마 커피 한 잔이 주는 각성과 위로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 다행이라고 바꿔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커피에는 폴리페놀, 비타민B2, 비타민 B5, 칼륨, 마그네슘 등의 다양한 영양소를 함유하고 있다. 더 중요한 건 카페인을 섭취할 목적만으로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세계 7위 수준의 커피 소비국가이면서 한 사람당 1년에 500잔이 넘는 커피를 마시고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기호식품에 그만큼의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정도까지 경제적으로 성장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1760년대 증기기관을 기반으로 한 기계화 혁명이 일어난 것을 우리는 1차 산업혁명이라고 부른다. 커피머신은 기본적으로 증기기관을 응용한 제품이다. 1차 산업혁명을 촉발한 증기기관의 발명이 없었다면 커피는 오늘날과 같이 대중화되는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고,
어쩌면 오늘날에도 커피는 상류층만의 기호식품으로 남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초연결’, ‘초지능’, ‘초융합’으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1차 산업혁명의 산물인 증기기관을 이용하여 내려지는 커피를 마신다는 것. 이것은 또 얼마나 낭만적인 일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