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원챔피언십 결승전서 김가영 꺾고 역전승
국내여자프로 중 최고연봉… 유튜브 구독자 7만명
2011년 남편 권유로 처음 큐 잡으며 재능 발견
“고국 캄보디아 어린이들에게 희망 주고 싶어”

[동양일보 조석준 기자]“처음 청주에 왔을 때 만 해도 모든 것이 낯설었기 때문에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그러던 중 남편을 따라 간 당구장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공이 마냥 신기하고 재밌어 보여 시작한 당구로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조국 캄보디아의 발전과 소중한 기회를 준 대한민국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지난 20일 경북경주에서 열린 LPBA(여자프로당구) 2021-2022 시즌 개막전인 ‘블루원리조트 챔피언십’ 쓰리쿠션 결승전에서 2009·2011 WPBA(세계여자프로포켓볼협회) 세계랭킹 1위인 김가영(신한금융투자)을 맞아 세트스코어 3-1(7-11 11-4 11-10 11-9)로 꺾은 ‘청주댁’ 스롱 피아비(Sruong Pheavy·31·충북 청주시 청원구 율량동·블루원엔젤스).

귀여운 외모와 달리 신장(167cm)에 비해 유난히 긴 리치(팔길이·178cm) 등 좋은 신체조건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워풀한 플레이로 국내·외 많은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피아비는 캄보디아 시골마을인 캄퐁참(수도 프놈펜에서 자동차로 6시간거리) 출신이다.

한때 의사를 꿈꿀 정도로 공부를 썩 잘했지만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감자농사일을 돕던 그는 스무 살이던 2010년, 남편 김만식(당시 49세) 씨와 국제결혼을 한 뒤 충북청주에 둥지를 틀었다. 꽃다운 나이에 모든 것이 낯선 머나먼 이국땅에서 가족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훔쳐야만 했던 피아비는 2011년 평소 당구를 즐기던 남편의 권유로 처음 큐를 잡았다. 이때 뜻밖의 재능을 발견한 김 씨는 아내에게 본격적인 당구기술을 익히게 했다.

“사실 처음 당구를 배울 땐 너무 힘든 나머지 연습을 중단하고 식당에서 일을 하는 등 여러 차례 포기하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제 인생은 물론, 조국인 캄보디아를 위해 더 값진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다시 큐를 잡았고 밤낮없이 독하게 연습하면서 기량을 갈고 닦았습니다.”

피아비는 하루 평균 8~10시간 연습에 집중했고, 대회를 앞둔 시점엔 무려 20시간 동안이나 손에서 큐를 놓지 않은 적도 있다. 그 결과 2014년부터 전국 아마추어 대회를 휩쓸었고, 2017년 정식선수 등록을 한 뒤 전국대회에서 3차례 우승하며 국내 정상에 올랐다.

이 소식이 캄보디아 전역에 알려지면서 우리나라 IMF 스포츠 영웅인 박찬호와 박세리처럼 큰 인기를 얻게 됐다. 급기야 2018년 캄보디아 당구국가대표로 국제대회에 출전한 피아비는 세계선수권과 아시아선수권에서 연달아 입상하는 등 세계랭킹 2위에 올랐다.

지난 2월 프로로 전향한 뒤 출전한 LPBA 데뷔전에서 32강에 머물며 본선 진출에 실패했지만, 지난 5월 PBA팀 리그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블루원리조트에 지명된 뒤 치른 이번 경기에서 소속사에 보답이라도 하듯 우승트로피를 안겨줬다.

지난해 7월 청주 송절동에 오픈한 ‘피아비큐 당구장’에서 직접 진행 중인 유튜브 방송 ‘피아비큐’ 구독자 수도 최근 우승한 뒤 3일 만에 기존 6만5000명에서 단숨에 5000명이 늘어 7만명에 이르고 있다.

피아비는 한국에 이민 온지 11년이나 됐지만 여전히 그의 국적은 캄보디아다. 아이만 낳으면 귀화도 충분히 가능하지만 피아비의 남편이 아내의 조국인 캄보디아에 세계대회 금메달을 안겨주며 국민들에게 힘과 용기를 줄 수 있고, 나이차이가 워낙 많아 자신이 먼저 세상을 떠날 경우 아내가 수월하게 새 인생을 꾸려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피아비는 자신처럼 꿈을 꿀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캄보디아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선물하기 위해 스포츠전문학교 건립을 위한 부지를 계약한 상태며, 지난 5월 캄보디아 어린이들에게 절실한 구충제(2000명분)와 마스크(5만장), 학용품 등을 지원했다. 또 이번 대회 우승상금 2000만원도 어려운 이웃들을 돕기 위해 그의 아버지에게 기탁할 예정이다.

“한국 사람들에겐 따뜻한 정이 느껴집니다. 사실 한국선수를 이겼음에도 당구장을 찾는 삼촌·오빠(피아비가 손님들을 대할 때 쓰는 호칭)들은 물론 주변의 모든 분들로부터 수많은 격려와 칭찬을 받고 감동했지요. 누구보다 이 자리에 설 수 있게끔 감독과 매니저 역할을 해준 남편에게 ‘사랑하고 존경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피아비는 PBA-LPBA 1부투어 △2차대회(2021.8.17~24) △3차대회(2021.9.15~22) △4차대회(2021.11.16~23) △5차대회(2021.12.7~14) △7차대회(2022.1.26.~2.2) △PBA-LPBA 월드챔피언십(2022.2.26.~3.7) 등 6번의 경기에 출전할 예정이다. 조석준 기자 yohan@d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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