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청호 시인
[동양일보]내 고향 마을에는 어릴 적에 작은 개울이 여기저기 많았다. 그 개울이 합쳐져 무심천으로 흘러들었다. 어릴 때 함박교 근처의 냇가에서 고기를 잡고 새소리 들으며 학교에 다녔다. 지금은 청주시 상당구로 행정구역이 조정된 가덕면 노동리와 상대리를 일컫는 지역이다.
인차리를 지나 범마루 새터말 윗들말을 지나 상대리 퇴일 등 자연마을이 내를 바라다본다. 소박한 자연부락의 모습은 사라지고 전원마을로 개발되고 경지정리가 되었다. 세련된 꽃길과 도시근교 농업으로 풍요로운 전형적 농촌마을이 되었다.
무심천 제방을 따라 상류로 올라가면 마을 앞을 흐르는 작은 냇가 모래밭에서 놀던 일이 종종 옛 생각이 난다. 햇살을 튕기면서 바닥 모래가 비쳐 보이는 맑은 물과 동그란 몽돌 및 고운 모래가 하얗게 깔려있었다.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냇물에 들어가 신나게 물장구를 치고 나면 귀에 물이 들어가곤 했다. 따끈따끈하게 데워진 넓적한 검은 돌을 하나 주워 귀에 대고 제자리에서 몇 번 통통 뛰고 나서 보면 넓적한 검은 돌에 물기가 묻어나곤 했다. 귀에 들어간 물이 나온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심심해지면 젖은 모래를 욕심껏 끌어다 작은 언덕을 만들어 놓고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이기는 사람이 모래를 끌어가는 게임도 했다. 게임의 룰이 모래더미 꼭대기에 꽂아놓은 나무 작대기가 쓰러지지 않게 모래를 끌어가는 것이다.
그러다가 그 게임도 싫증이 나면 자갈밭을 걸으면서 몽돌을 주웠다. 몽돌을 주워 들여다보고 있으면 흐르는 물이 어떻게 갈고 다듬어 이렇게 까맣고 하얀 동그란 몽돌을 만들어 내는지 생각할수록 신기했다.
언제인가 동네 형이 특별한 것을 주웠다고 우리를 불렀다. 우리가 달려가 보니 모래 점들이 알알이 박힌 물새알이었다. 그것도 여섯 알이나 되었다. 그때서야 우리는 어미 새가 귀 찢어질 정도로 짖어대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급기야 어미 새는 하늘 높이 솟았다가 우리를 향해 내리꽂힐 듯이 날아 내렸다. 하지만 동네 형은 따끈한 물새알을 똑 깨서 입에 털어 넣으며 맛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어미 새도 이미 때가 늦었음을 깨달았는지 아니면 너무 울다 지쳤는지 더 울부짖지 않았다. 그렇지만 땅을 치고 하늘을 원망했을 것이다.
며칠 전에 우연히 전병호 시인의 동시조 '몽돌'을 읽고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기억 속의 그 일을 떠올렸다. '몽돌'은 국어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물새가 껍질을 깨고 / 나오려는 것일까. // 손에 쥐니 참 따뜻하다 / 어미 새가 품던 알처럼 // 바다가 갈고 다듬어 놓은 / 작고 까만 / 돌 새알”('몽돌' 전문)
이 시에서 전병호 시인은 몽돌을 새알로 보고 “손에 쥐니 참 따듯하다” 하니 어미가 체온으로 품던 물새알이 생각난다. 무생물인 돌에 생명을 부화할 수 있는 새알로 비유한 것이 공감이 되었다. 나의 동심이 살아있음을 ……, 아마 이 시인도 몽돌을 주워들고 지난날 겪었던 수많은 관련 경험을 떠올리고 새알이라고 비유했을 것이다.
동네 형에게 알을 빼앗기자 목숨을 걸고 돌진하던 어미 새는 이 냇가에서 또 알을 낳고 새끼를 부화했을까? 아니면 야속한 인간들을 원망하며 떠나갔을까?
제방을 따라가면서 흐르는 물줄기를 보며 물은 오늘도 흐르지만 옛날 같지 않다. 곱고 하얀 모래밭은 어디로 떠내려갔는지 보이지 않고 듬성듬성 흉하게 주저앉은 돌 더미 주위로 어른 키만큼 자란 억새들이 무성하다. 정지용 시인의 '향수'에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에서 아이들과 몽돌을 주우며 발가벗고 헤엄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무엇이 마을 앞 냇물을 이렇게 바꾸어 놓았는가. 옛날처럼 물새알을 보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보기어렵다고 포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는가. 이런 사실을 후대들은 이해하기도 어려울 텐데……, 나는 계속 냇가를 걸으면서 몽돌 밭을 기웃거릴 것이다. 만약 내가 돌 틈에서 물새알을 다시 보게 된다면 그땐 어떻게 할까. 얼른 못 본 척하고 걸음을 빨리 해서 지나갈 것이다. 같이 가던 사람이 있으면 다른 길로 가자고 손을 잡아끌 것이다. 그 사람이 누구라도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