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현숙 시인
[동양일보]코로나19 변이바이러스로 회식이나 모임도 서로에게 민폐가 되니 꼼짝없이 집, 거실에 앉아 식구들이 티브이 채널을 돌린다. 밤 10시가 넘었는데 동화처럼 화면을 가득 메운 영화가 방영되고 있어 의아했다. 그 멕시코 영화는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색채가 화려했고 인물들의 표정 하나하나가 정교했고 풍부한 포용력이 느껴지는 따듯한 가족영화 ‘코코’였다.
어린 소년이 주인공이 아니었다. 치매를 앓고 있는 할머니가 주인공이었고 그녀의 이름이 코코였다. 꽤나 호기심을 유발하는 도입 부분이다. 반전의 반전이 이어지며 소재는 신선한 감동을 준다.
어린 미구엘은 기타를 치며 노래하고 싶어 하는 꿈 많은 천진난만한 뮤지션 소년이다. 그렇지만 가죽으로 신발을 만들며 생계를 이어가는 가족들은 미구엘이 가업을 이어가길 소망한다. 말을 듣지 않는 미구엘의 기타를 어머니는 부수어 버리고 소년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버린다. 집을 뛰쳐나간 미구엘은 조상들이 잠들어있는 공동묘지에서 유령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날은 죽은 자들이 저승에서 이승의 다리를 건너 자신들을 기억해 주는 산 사람들을 만나러 오는 날이었다. 미구엘은 전설적인 음악가로 유명했던 증조할아버지를 만나러 저승으로 용감하게 건너간다.
그 곳에서 자신의 음악에 대한 열정을 깨닫게 되고 이승으로 돌아와 코코 할머니를 위해 증조할아버지가 작곡한 ‘리멤버 미’를 직접 기타로 들려준다. 평생 기다린 아버지의 절절한 멜로디를 미구엘의 연주로 듣는 코코 할머니의 눈빛은 제일 큰 감동이었다.
소년 미구엘은 제당에 코코 할머니와 할아버지, 외증조할머니와 할아버지, 외고조할머니와 할아버지, 증조할머니와 할아버지, 고조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사진을 나란히 올려놓고 날마다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드린다. 자손을 만나러 올 때는 행복한 모습으로 이승의 다리를 건너오시라고, 그렇게 함께 살아가는 소박한 가족 이야기는 세대 간의 갈등과 배려를 품고 있었다.
이 영화는 산 사람들이 죽은 사람을 기억해 주지 않으면 저승에서 먼지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많은 여운이 남았다. 그래서 멕시코 사람들은 조상들의 사진을 제당에 올려놓고 늘 옆에서 함께 지내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조상의 지혜와 가르침은 후손의 어두운 길을 밝히는 등불과 같다. 명절이 간소화되고 조상들을 기억하는 차례를 지내는 일조차 점점 소외되어가는 일이 안타깝다. 웃어른과 조상을 잘 모시는 일도 우리 후손들이 잘 되는 일임을 나는 절대적으로 믿는다. 그런 마음가짐이 우리를 사랑으로 묶어가는 든든한 끈이라고 생각한다.
목련공원 납골당에 걸린 내 아버지 사진이 어느 날은 환하게 웃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우울해 보이기도 한 걸 보면 행복과 슬픔의 간격이 그리 먼 것 같진 않다. 그리움을 만드는 일은 후회하지 않는 삶을 잘 가꾸어가는 일이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