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아영 수필가

 
최아영 수필가
최아영 수필가

[동양일보]이 또한 벌써 추억이 되어버렸다. 일상이 무너지기 시작한 작년 오월이었다. K시인과 함께 무심천을 거닐게 되었다. 문학치유 동아리 커리큘럼 중 하나가 무심천 걷기였다. 마음의 병이 문학을 통한 글쓰기로 치유가 된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한사람을 구하는 일이 인류를 구하는 것에 버금간다는 탈무드의 교훈은 괜한 소리가 아니었다.

‘생거진천’에서 청주시까지 한달음에 달려왔다. 시(詩)를 배워볼 욕심도 있었지만 그를 빌미로 시인의 반경에 머물고도 싶었던 게다. 배움을 열망하는 자에게 하늘은 틀림없이 스승을 보내준다고 나는 들어왔다.

오작교에서 퐁네프다리까지 왕복 한 시간 남짓 걷게 된다. 오작교라 함은 무심천에 놓인 다리중 하나로 용암동과 분평동을 잇는‘용평교’를 두고 하는 말이다. 동아리 회원들이 동쪽과 서쪽으로부터 와 그 지점에서 만나는 다리라 해서 오작교라 이름 지었다. 퐁네프다리 역시 대청호 물줄기 위에 놓인 자그만하고 사랑스럽게 생긴 다리에 붙여준 애칭이었다. 깜찍한 낭만이었다.

천변 산책로에는 처음으로 외어보는 서리개미와 부처님 귓불을 닮았다는 풀꽃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군데군데 꽃대만 겨우 남은 엉겅퀴가 나지막이 앉아 있었다. 여느 그림엽서에서 본 엉겅퀴보다도 매력 있어 보였다. 그를 슬쩍 슬쩍 건들며 지나가는 바람 뒤로는 어린갈대들도 쑥쑥 올라오고 있었다. 행여 뿌리내리기도 전에 쓰러질까봐 지지대가 되어주는 어른갈대들 사이사이로.

어린 갈대들이 부러웠을 나의 청년기는 지지대 하나 없이 그야말로 갈팡질팡 천방지축이었다. 때마침 무리지어선 개망초들의 헤실거리는 모양새가 내 젊은 날의 초상을 보는 듯 했다. 민망했다. 머리 따로 걸음 따로 혼이 빠져있을 때 개망초를‘계란꽃’이라고도 한다며 거듭 거듭 강조하는 K시인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한낱 들꽃 이름이기로 개망초면 어떻고 물망초면 어떨까 만은 풀꽃 하나에도 연민을 느꼈을법한 시인의 사람냄새에 가슴 뭉클했던 것은 정작‘개망초’가 아닌 ‘나’였음에랴.

걷다보니 어느새 목적지인 퐁네프다리였다. 뜨끈뜨끈해진 난간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시인의‘퐁네프 강연’을 가슴에 아로새긴다. 꾸덕꾸덕했던 심장이 다 녹녹해진다.

이윽고 되돌아 와 근처‘원마루 시장’에서 쓱쓱 비빈 나물밥으로 배꼽시계를 충전시킨 후 카페 라파(Rapha)에 모여 앉았다. 서로를 토닥거려준다. ‘라파’는 히브리어로 회복이나 치유를 뜻한다 한다. 겨우 2번째 참석이었지만 그간 내가 써 두었던 글들을 꼼꼼히도 읽어보셨는지 시인께서는 맞춤형‘詩처방전’을 가지고 오셨다. 가히 명불허전이었다.

그예 퐁네프 풍경이 되었다. 어떤 축복이 내게 더 필요했을까. 이슬 한 방울로 전 생애를 구원 받지 않았는가. 하마터면 크게 소리 내어 울 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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