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최고령 바리스타 박옥기 씨

아버지 교통사고로 어려워진 형편에 학업·꿈 포기
남편 병수발까지 해가며 뇌경색으로 쓰러지기도
시간 흘러 버킷리스트 실천하며 정상 생활 되찾아
현재 시인·수필가·시니어 모델 등으로 활동 중
“허무하게 삶 마감할 수 없죠… 제2의 삶 만끽할 것”

 

박옥기씨
박옥기씨

[동양일보 조석준 기자]“하고 싶은 일을 못하는 것처럼 불행한 일은 없습니다. 4남매 중 맏이로 태어나 가사와 동생들을 돌보느라 학업도 포기한 채 모든 꿈을 접어야만 했죠. 발버둥 치듯 살아온 그동안의 세월이 야속할 때도 있었지만, 인생은 지금부터라는 생각에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며 하루하루 감사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호적상엔 일흔넷이지만 실제나이는 일흔여섯 해방둥이라 2년 더 젊게 사는 특혜를 누리고 있는 만큼 더욱 왕성한 삶으로 저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나눠주고 싶습니다.”

여든을 앞두고 바리스타와 시인, 수필가, 시니어모델‧배우 등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옥기(76)씨는 강원삼척의 유복한 죽산 박씨 종가에서 태어났다. 여덟 살 무렵 그의 어머니가 사대부집안의 대를 잇는 남동생을 낳자, 당시 문중에선 풍수가 좋은 속리산 밑으로 가야만 대대손손 가문이 번창할 수 있다면서 이사를 하게 해 충북과 인연을 맺게 됐다. 보은군 마로면에 둥지를 틀게 된 박 씨는 관기초등학교를 다니며 한창 꿈 많은 유년시절을 보내던 중 아버지가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머리를 크게 다친 박 씨의 아버지는 3차례의 뇌수술과 8년간의 투병생활 끝에 돌아가셨고, 수술비와 치료비 등을 마련하느라 재산 대부분을 잃게 됐다. 평소 책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했던 박 씨는 갑자기 어려워진 가정형편에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집안일을 도와야만 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박 씨가 스무 살이 되던 1964년 평소 알고지내 던 지인(시누이) 소개로 만난 지금의 남편과 가정을 꾸려 4남매를 낳았고, 2009년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청주로 이사했다. 자녀들이 결혼과 직장생활을 하면서 손자·손녀의 육아는 자연스레 그의 몫이 됐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주들이었지만 혼자서 육아를 감당하기엔 체력적으로 한계를 느꼈다. 더욱이 청주로 이사 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뇌출혈로 쓰러진 남편의 병수발까지 해야 하다 보니 몸은 점점 쇠약해 졌고, 결국 허리디스크수술을 받기에 이르렀다.

“8명의 손자·손녀 중 5명을 돌봤습니다. 사랑하는 자식들과 손주들을 위해 기꺼이 한 일이지만 몸이 잘 따라주지 않아 더 많이 챙겨주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다행히 그 아이들이 지금은 멋진 경찰과 군인, 대학생 등으로 성장해 여간 대견하고 자랑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간이 흘러 거동조차 못하던 남편이 다시 걷게 되는 등 인생의 무거운 짐들을 하나씩 내려놓게 된 박 씨는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을 하기 위해 버킷리스트를 작성, 실천에 옮겼다.

배움에 목말랐던 박 씨는 가장먼저 검정고시로 중학교 과정을 이수했고, 사회복지관에서 시·수필, 미술, 아동극, 오카리나 수업과 자원봉사 등을 하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갑자기 무리했던 탓일까. 박 씨는 2015년 뇌경색으로 쓰러지면서 급격히 기억력이 떨어졌고, 말을 잘 하지 못하게 된데다 손과 다리에 마비가 왔다. 박 씨는 고생만하며 지내온 지난 세월이 너무나 억울했기에 재활에 안간힘을 썼다. 틈만 나면 글을 썼고, 매일 걷기 운동을 하면서 기억력과 마비된 팔다리의 신경이 조금씩 되살아났고, 어느새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에 이르렀다.

“뇌경색으로 쓰러져 누워 지내는 동안 요양원 노인들이 고통 속에서 허무하게 삶을 마감하는 안타까운 모습이 자꾸 떠올라 그대로 주저앉아 있을 순 없었죠. 몹시 고통스러웠지만 다시 일어서기 위해 어금니를 물었고, 결국 재활에 성공해 제2의 삶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이후 시니어모델과 청주액터스 배우 등 새로운 분야에 도전했다. 그는 영화 ‘졸업’(2019), ‘객’(2019) ‘슈퍼히어로’(2020), ‘아이들은 즐겁다’(2020), ‘나눔은 액션이다’(2020)와 드라마 ‘괴물’(2020) 등에 출연한데 이어 CF광고(청주시 치매예방, 휠체어) 등 각종 홍보영상으로 얼굴을 알렸다. 특히 청주시 1인1책 펴내기 운동에 참여해 자신과 어머니, 할머니 등 3대가 쓴 글들을 정리해 시집 2권, 수필집 4권 등 6년간 모두 6권의 책을 펴냈고, SK하이닉스에서 무상으로 실시한 실버바리스타교육을 이수해 바리스타 2급 자격증을 따냈다.

박 씨는 현재 SK하이닉스의 후원으로 청주시 흥덕구 송정동 솔밭공원 내 오픈한 ‘카페솔솔’의 바리스타로 근무 중이다.

가족으로 남편 장진영(80) 씨와 우옥, 만수, 노수, 연수 4남매가 있다. 조석준 기자 yohan@d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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