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석 기상청장

박광석 기상청장
박광석 기상청장

[동양일보]‘명사수는 바람을 탓하지 않는다.’

이 오래된 격언에 딱 들어맞는 이를 지목하라면 누굴 택하겠는가. 아무래도 얼마 전 올림픽 9연패의 신화를 쓴 우리나라 양궁 여자대표팀이 제격일 것이다. 실제로 대표팀을 포함한 국내 양궁 선수들은 시합 날 불어오는 비바람을 탓하지 않는다고 한다.

선수들의 선택은 날씨에 대한 원망 대신, 과감한 ‘오조준(誤照準)’이다. 빗방울과 바람으로 인해 미세하게 틀어질 화살 방향을 고려해 일부러 과녁을 빗겨 조준하는 것이다. 날씨를 알면 승리가 보인다는 말이 있다. 앞서 언급한 양궁의 경우처럼, 날씨는 스포츠 경기에 있어 승패를 가를 정도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기도 한다.

기상 상황에 맞춰 자신의 ‘주무기’에 변화구를 구사할 수 있는 자만이 진정한 승리자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이다. 코치 및 코칭스태프(coaching staff)도 유능한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날씨별 전략 구상이 필수다. 일반적으로 스포츠에 영향을 주는 날씨 요소로는 온도, 습도, 바람, 기압 등이 꼽힌다. 육상경기에서는 바람이 중요시되는데, 100m와 200m 달리기, 허들, 멀리뛰기, 삼단 점프 등 바람에 민감한 종목은 선수의 뒤쪽으로 2m/s 이상의 바람이 불 경우 공인 기록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야구 종목은 바람뿐만 아니라 습도와 기압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습도와 기압이 낮은 곳에서는 공기의 저항이 적기 때문에 공이 멀리 날아가게 되어 타자에게 유리하다.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에 위치한 '쿠어스 필드' 경기장은 해발 1,600m의 고지대에 위치해 있는데, 낮은 공기 밀도와 습도 탓에 홈런이 자주 쏟아져 '투수들이 무덤'이라 불리는 곳이다. 반면 습도가 높고 흐린 날은 야구공의 비행거리가 10% 정도 감소하여 투수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한 환경이 조성된다. 때때로 날씨는 승패를 넘어 선수들의 안전을 위협하기도 한다. 얼마 전 개최된 2020 도쿄올림픽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당시 도쿄는 낮 기온이 35도 가까이 오른 데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일본의 지리적 특성상 높은 습도가 유지돼 체감온도는 연일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결국 무더운 날씨 탓에 양궁 경기 중 러시아 선수가 실신을 했으며, 테니스 경기 중에는 두 차례 ‘메디컬 타임아웃(medical timeout)’ 요청이 들어오기도 했다. 기상청은 선수들의 안전을 지키고 원활한 경기 운영을 지원하기 위해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을 시작으로 1988년 서울올림픽, 2002년 한일월드컵 등 국제행사를 위한 기상서비스를 제공했다.

최근에는 2014 인천아시아게임과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 개최됨에 따라 종합상황실 기상 모니터링을 지원하고 경기장별 맞춤형 기상정보를 제공하는 등 대회가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에 나섰다. 특히 평창동계올림픽의 경우, 겨울철 강원도의 산악지역에서 개최되고 대부분의 경기가 야외에서 진행된다는 점에서 ‘날씨 올림픽’이라 불릴 정도로 기상 상황이 매우 중요했다. 이에 기상청은 경기장별 기상관측망 구축, 산악기상 전문 예보관 양성, 경기장 수치예보 가이던스 개발 등 기상지원을 위한 인프라를 체계적으로 준비하여 올림픽대회가 무사히 운영될 수 있도록 지원하였다. 아울러 청주기상지청에서는 2016년부터 충주 조정경기를 위한 기상 지원을 실시하고 있다.

조정 경기 시에는 풍향, 풍속 그리고 가시거리(안개)가 중요하며, 경기 진행 전 이들 요소를 중점으로 한 날씨 브리핑과 실시간 맞춤형 기상정보를 지원해 경기 운영에 도움을 주었다. 스포츠에 있어서 기상정보는 원활한 경기 진행과 선수 및 코치의 전략 수립에 많은 영향을 준다. 앞으로도 기상청은 종목별 특성에 맞는 기상요소를 반영하여 맞춤형 서비스를 지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아직까진 코로나19로 대부분의 스포츠 대회가 잠정 연기 혹은 무관중으로 진행되는 상황이지만, 단계적인 일상 회복으로 다시 관중의 함성이 가득한 경기장에서 기상지원을 하게 될 날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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