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석 미술평론가
공교롭게도 전환의 시기에 이선희(38) 작가는 대전시립미술관이 기획했던 ‘프로젝트대전 2014, 더 브레인’에 참여하면서 만났던 카이스트 대학 뇌과학자들로부터 시냅스와 기억의 관계를 공부할 수 있었고, 오랫동안 품어왔던 자신의 창작 물음을 명료하게 ‘기억을 직조할 수 있을까?’로 가다듬었다. 이 물음은 그간 다양한 주제와 은유로 시각화되고 변주되었지만 현재도 그 물음의 핵심은 변함없다고 한다.
우리는 자신만의 삶과 그 켜켜이 쌓인 기억 속에 좋은 것과 아픈 것을 함께 갖고 있다. 현재를 어떻게 하면 잘 살아갈까 하는 생각을 늘 한다. 작가의 경우, ‘제 성향은 가급적 좋았던 기억을 더 뒤져내 엮어, 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길을 내려 노력하는 편’이라고 한다.
작가는 구입한 뜨개실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누군가 한때 입었던 뜨개옷을 풀어서, 또는 누군가의 헌 옷을 수집하여 가늘게 썰고 다시 엮는다. 그녀의 손뜨개질 행위는 작가 자신 또는 누군가의 시간 속에 수 백 수 천 겹 쌓여 집적된 기억층을 한 겹 한 겹 발굴하는 기억의 추적이다. 기억의 고고인류학자로서 작가는 그 추적 과정에서 좋은 기억, 아픈 기억을 마주한다. 뜨개실(천조각)뿐만 아니라 돌, 엽서, 명함, 청첩장, 액자 등 기억이 묻은 모든 일상의 오브제는 그녀의 직조(풀어내 다시-엮기의) 대상이다.
작가는 여러 양태의 기억을, 풀어 헤치는 발굴의 과정에서도 만나지만, 그 풀어낸 긍정의 기억과 부정의 기억을 다시 엮는 과정에서도 또다시 수차례 마주하고 또 마주한다. 마주하는 것은 또 있다. ‘저에게 직조, 다시-엮기는 지나간 한켠에 묻힌 기억을 마주하는 과정이예요. 좋은 것이든 아픈 것이든 일단 꺼내 놓으면, 한 번 털어내고 나면 내 마음이 한결 나아져요.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꿔요. 그 길고 긴 직조 과정에서 방향을 바꾸는 나, 새로운 길을 내는 나를 마주하게 되요. 이것 더 중요해요.’
이선희 작가는 경제적으로 생활의 방편이 크게 되지 못하는 작업을 왜 계속하는가 라는 스스로의 물음에, ‘그 작업의 과정이 길면 길수록, 힘들면 힘들수록, 마주하는 시간이 긴 만큼 제가 더 단단해진다는 생각이 들어요. 평온에 이르러요. 그래서 계속 작업하는 것 같아요.’
2015년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에서 일반 시민(어린이와 함께)을 대상으로 작가가 이름지은 워크숍 제목 ‘꼼지락 꼼지락 뜨개질’이 눈에서 떠나질 않는다. 작가는 홀로 앉아 꼼지락 꼼지락 손뜨개질로 길고 긴 시간 자신 속으로 깊이 깊이 가라앉는다. 마치 득도에 이르려는, 궁극적 평온에 이르려는 수행자처럼. 기억을 다시 엮는 매 순간 그녀는, 자신의 현재를 선택하는 나를 만난다.
▷이선희 작가는...
충남대 조소과(2007) 졸업. 국민대 일반대학원 미술학과(입체미술전공 석사 2011, 박사 2014) 졸업 및 수료, 개인전 8회, 미술프로젝트 기획 및 전시 5회, 단체전 50여회. 음성 영무예다음(3차), 천안 와촌 동아라이덴 등 작품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