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년 공직생활을 마무리하며-박승렬 충북도교육청 행정국장

 

[동양일보]삼일 밤 자고 나면 흑 호랑이띠 임인년(壬寅年)이다.

박승렬 충북도교육청 행정국장
박승렬 충북도교육청 행정국장

새해를 맞는 이 땅의 모든 사람이 호랑이 기운을 받아 원하는 대로 소망이 이뤄지길 두 손 모아 기원한다.

임인년 첫날은 필자가 공로 연수를 시작하는 날이다.

충북 음성군 맹동면 쌍정리 성지산의 외딴집에서 태어나 1981년 단양 도담초에서 시작한 공직생활과 퇴직을 앞둔 공로 연수 이 모든 것이 정말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누군가 41년 공직생활을 한마디로 말하라 하면 ‘새옹지마’, ‘사필규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오늘의 기쁨과 슬픔이 영원한 것처럼, 일희일비하지 말고. 묵묵히 생활하면 세상이 진실을 알아준다는 것을 가슴 깊이 느꼈기 때문이다. 지내보니 그렇다는 말이다.

1998년 충주교육청 경리계장으로 재직할 때였다.

충주엽연초생산조합이 충주교육장을 상대로 충주남산초 부지를 반환해 달라는 소송을 냈다. 남산초 운동장을 1937년 일제시대부터 61년간 무단으로 사용하고 있으니 반환하라는 소송이었다.

해당부지는 당시 공시지가로만 20억원 정도였다. 다들 교육청 패소를 예견했다. 조합이 남산초에 부지를 기부한다는 서류가 6·25전쟁 때 사라졌기 때문이다. 답답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오죽 몸이 달았으면 점쟁이를 찾아가기도 했으랴….

필자는 포기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소송을 진행했다.

결국 당시 98세인 김웅기 1대 충주교육감(현재 교육장) 등의 도움을 받아 대법원까지 가서 3년 만에 승소했다.

소송을 위해 연로하신 김웅기 충주교육감을 등에 업고 때로는 간호도 해드리며 엘리베이터가 없는 4층 변호사 사무실을 수없이 오르락내리락했던 일이 지금도 생생하다.

교원이 아닌 필자가 제자를 둔 행복한 일도 있었다.

김진서씨는 인연 맺은 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날 선생님으로 부르며 매년 찾아온다. 참으로 대단하고 고마울 뿐이다.

무극중학교 행정실장으로 근무할 때다. 당시 난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학생회장이던 김진서 군은 내 출근 가방을 보고 그 가방에 뭐가 들었느냐 묻기에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책이 들어 있다고 답해주었다. 그 후 몇 번인가 필자가 야근할 때 영어나, 수학 문제를 가져와 물어보기에 아는 대로 가르쳐줬다.

그 후 진서 군이 주재하는 학생 간부회의에서 학교시설을 수리해달라며 건의가 들어오기에, 이미 다 고쳐 놓았다고 말해줬다. 진서 군은‘예전에 몇 번씩 말해도 잘 안 되었는데’라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런저런 심연이 쌓인 후 진서 군은 직접 가르치는 분만이 스승이 아니라며 교훈을 준 분도 진정한 선생님이라는 편지를 보내왔다.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앞으로 만나볼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진서 군과의 사제 인연은 그렇게 맺어졌다. 지금도 고맙고 고마울 뿐이다.

진서 군은 지금 음성군청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재직 시절 IMF를 겪을 때 원어민교사가 국내에서 편히 거주하도록 전세 아파트를 임대한 적이 있다. 아파트 주인이 부도가 나서 전세금 회수에 난항을 겪었다. 필자는 부도를 낸 건물주가 취직한 회사를 알아내고 봉급압류를 추진했다. 후에 그 건물주가 찾아와“징글맞다…. 휘발유 뿌리고 같이 죽자”라고 하며 찾아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나중에 결국 전세금 회수를 못해 관련 직원 모두 십시일반 배상을 했지만, 필자는 끝까지 전세금 회수를 위해 노력한 점을 인정받아 배상에서 제외됐다.

이외에도 수학여행에 따라나섰다가 세면장에서 넘어져 숨이 멈춰 사경을 헤매던 아이를 사혈침으로 살린 일, 밤늦게까지 야근하며 민원에 시달린 일 등 너무나 많은 일이 있었다.

당시에는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지만, 고비를 넘겨 공로 연수를 앞둔 지금에서 되짚어 보면 모든 일은 새옹지마와 사필귀정이었다.

공직생활을 하면서 최선을 다해 근무했기에 후회는 없다

자연석이 구르고 굴러 매끄럽고 부드러운 조약돌이 된다고 한다. 인생은 자연석이 조약돌이 되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

41년간의 공직생활 끝까지 다 마치고 무사하게 퇴직할 수 있도록 도와준 가족, 동고동락한 모든 교직원께 이 기회를 빌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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