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숙 시인

김은숙 시인

[동양일보] 2022년 임인년(壬寅年) 새해가 밝았다. 검은 호랑이해를 맞아 지금은 우리 땅에서 볼 수 없는 호랑이 한 마리가 어슬렁어슬렁 눈밭을 걸어오는 모습을 상상하다가, 우리 민족에게 호랑이는 어떤 정서적 맥락을 형성해왔는가 되짚어본다. 단군신화에도 등장하고, 한반도를 호랑이 형상으로 여기는 것에서 먼저 호랑이에 대한 우리의 정서적 호감도를 알 수 있다.

육당 최남선은 ‘조선 역사 및 민속 사상에서의 호랑이’에서 ‘중국의 용, 인도의 코끼리, 이집트의 사자, 로마의 이리처럼 조선에서는 첫 번째 신성한 동물로 호랑이를 친다’고 했으며, 선조들이 남긴 그림에서도 호랑이에 대한 특별한 정서를 파악할 수 있다. 호랑이와 까치를 함께 그린 작호도(鵲虎圖)는 정월 초하룻날 문이나 벽에 걸어 액운을 쫓는 방패막이로 여겼으며, 십장생(十長生) 중 하나인 소나무와 호랑이를 함께 그린 송호도(松虎圖)는 노부부의 장수를 축원하는 그림으로, 대나무숲에 있는 죽호도(竹虎圖)는 병귀(病鬼)를 쫓는 그림으로 애용되었다.

용맹하고 늠름하며 강인한 기상을 지닌 호랑이는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면서 산신령 등 인간을 보호해주는 수호신 상징이 되기도 했다. 한국문화 속 이야기와 그림과 노래에 담겨 수많은 비유와 상징으로 다양하게 해석되고 다채롭게 변주되어온 호랑이는 단군신화에서 88 서울올림픽의 호돌이, 평창동계올림픽 마스코트 수호랑에 이르기까지 색다른 이미지와 정서를 담고 새로운 문화 콘텐츠로 재탄생 되어왔다.

백범 김구 선생은 <나의 소원>에서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며‘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고 했는데, 호랑이 하나로도 풍성하고 다채로운 스토리텔링을 전개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문화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면을 통해 우리 민족에게 내재된 인문학적 상상력과 풍부한 문화 유전자를 감지할 수 있다. 이렇게 오랜 세월 누적되어 온 높은 문화의 힘이 있기에 오늘날 여러 분야에서 다채롭게 꽃 피우고 튼실하게 결실을 맺으며 세계적으로 박수를 받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아/우리에게 겨울이 없다면/무엇으로 따뜻한 포옹이 가능하겠느냐/무엇으로 우리 서로 깊어질 수 있겠느냐// (중략) 눈보라 치는 겨울밤이 없다면/추워 떠는 자의 시린 마음을 무엇으로 헤아리고/내 언 몸을 녹이는 몇 평의 따뜻한 방을 고마워하고/자기를 벗어버린 희망 하나 커 나올 수 있겠느냐’ -박노해 시‘겨울 사랑’부분

언제나 겨울의 한복판에서 새해를 맞으니 새해 첫날이면 박노해 시인의 ‘겨울 사랑’이 떠오른다. 겨울이어서 서로 깊어지고 헤아리고 키우는 것이 있다는 시구처럼, 이 겨울 혹독한 삶 속에 있는 사람들과 그런 삶을 견디게 하는 힘을 생각하며 새해를 맞는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겨울 날씨같이 매서운 2년여 병마의 기간을 모두 어렵게 견디며, 어떻게 서로를 헤아리고 배려하고 보듬어야 하는지 먼저 살피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 역시 우리 문화의 힘이며 온도라고 생각한다. 임인년(壬寅年) 새해, 문화로 아름답고 따뜻하고 더불어 행복한 사회가 되기를 소망하며, 병마의 계절이 그만 물러가기를 바라는 마음에 죽호도(竹虎圖) 하나 내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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