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인 수필가

유종인 수필가
유종인 수필가

 

[동양일보]일생을 살아오면서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마음으로 또는 머리로 쓰담을 받는다는 건 누구에게나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나에게도 세 가지의 쓰담은 인생의 고비를 넘을 때마다 큰 교훈이 아닐 수 없었다.

내가 태어난 고향을 떠나 인근 타군에 소재한 농업고등학교에 진학하여 학업을 이어가는 일은 너무나 어려움이 많았다. 수업료를 제 때에 보내주시지 못하는 어머니의 농촌생활은 초근목피草根木皮나 다름없었다. 농업으로 얻어지는 수입이 워낙은 적었거니와 내 밑으로 다섯 동생이 어머니만 쳐다보고 있었으니 내가 공부에 전념할 수가 없었다.

학업을 계속해야 할지, 아니면 자퇴를 하고 생활전선으로 나서야 할지를 망설일 때 유학지의 같은 마을에 사시는 명 선생님을 찾아뵌 적이 있었다. 사정을 다 들으신 선생님은 ‘참! 어렵겠구나’ 하고 위로해 주시더니 ‘시간이 해결할 문제이니 조금만 더 기다려 보고, 고민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 듯하니 너무 상심하지 말라’ 하셨다. 선생님의 쓰담이 머리에 박혀 무엇이든지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시간이 해결한다.’는 자위로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첫 직장에 들어가 생활고가 어느 정도 나아져 갈 무렵 동료들과 함께했던 무주의 탑사 여행 중 머리를 섬광과 같이 지나가는 어떤 선각자의 쓰담이 있었다. 무수한 돌탑으로 유명한 탑사여서 어느 탑의 모서리를 도는 순간 탑신의 중앙 탑 돌에 새겨진 글씨 ‘시혜불념 수혜불망’’ 여덟 자가 눈에 들어왔다. 직역하자면 ‘혜택을 베풀었거든 잊어버리고, 만약 혜택을 입었거든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경구였는데 20대에 얻은 교훈이지만 평생 잊혀지지 않고 생활의 모토가 되었다. 만약 어떤 선현의 말씀인지는 모르지만 이 쓰담이 없었다면 베풀고 난 후에 반대급부를 생각했을 것이고, 은혜를 입고서도 고마움을 잊어버리기 일쑤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30대에 직장의 상사로부터 받은 쓰담은 내 인생의 철학이 되었다.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지며 거짓은 영원히 감출 수 없다.’ ‘세상에 비밀은 없다.’며 사필귀정을 늘 강조하셨다.

어느 위치에서 어떤 일을 하든지 이 네 글자를 잊어 본 적이 없다. 편법을 생각하다가도 사필귀정을 떠 올려 일 처리를 하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편법을 따르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스럽게 생각되던지 늘 그랬던 기억뿐이다.

어렸을 때 증조부 곁에서 잠을 들라치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고, 고등학교 시절 할머니께서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해주시던 쓰담이 기억에 또렸하다. 성장과정에서 십 대, 이십 대. 삼십대에 마음속에 박히는 쓰담을 받았으니 인생의 좌표가 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제 내가 공부한 붓글씨를 써서 담고, 수필을 써서 담아 내 작품을 읽는 독자에게 쓰담이 되어주고 싶다. 부족하고, 내놓고 자랑할 것은 못 되지만 한 책에서 붓글씨 작품도 감상하고 글도 읽을 수 있다면 의미가 없지 않다고 생각된다. 붓글씨든 수필이든 붓(筆)을 사용하는 장르이니 이 또한 융복합인문학이 아니랴.

<현대수필>을 발행하였으며 한국수필학회를 창립하신 윤재천 수필가는 ‘골방수필을 벗어나 퓨전수필, 아방가르드 글쓰기 마당수필, 융합수필 같은 실험수필 등 수필문학의 다양성을 강조하고 있다. 책을 읽는 독자보다 책을 펴내는 작가가 많다는 비판도 모르는 바 아니나 스마트 폰 등 전자기기에 경도된 읽을거리가 책으로 이동되는 희망을 품어 본다. 쓰담의 수단으로 책의 위력은 여전하니까. 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친다)을 일필휘지한 안중근의사께 삼가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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