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겸 송면중학교 교장
[동양일보] ‘솔다’라는 순우리말을 아십니까? ‘공간이 좁다’라는 뜻으로 지금도 어른들께서는 자주 쓰시는 단어입니다. ‘맹이’는 요즘 거의 쓰지 않는 우리말인데 우리 지역에서는 ‘평평하다’로 쓰입니다. 오늘 저는 예쁜 말에 또 예쁜 말이 더해진 우리 지역, ‘솔맹이골’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동쪽에서는 제수리재, 서쪽에서는 원탑재, 남쪽에서는 늘티, 북쪽에서는 사기막고개를 넘어오면 좁지만 평평한 땅이 펼쳐집니다. 바로 이 동네가 ‘솔맹이골’입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충북 괴산군 청천면의 송면 지역 8개 마을을 아우르는 곳으로 삼송1~4리, 송면리, 관평리, 사기막리를 포함합니다. 현재 약 1200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이곳이 고향인 선주민들과 적지 않은 수의 이주민들이 함께 어우러져 지내는 마을입니다.
우리 지역의 매력과 이곳에 둥지를 튼 이유를 조사한 결과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첫 번째로 농산촌 마을의 공동체성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정월대보름날이면 마을마다 잔치를 열고 어떤 마을에서는 어울렁더울렁 풍물놀이를 하고 어떤 마을에서는 주민들이 모여 달집을 태우며 대야산 위로 떠오르는 달님에게 소원을 비는 행사를 해마다 진행했습니다.
두 번째는 매년 어린이날 행사가 열립니다. 지역 주민, 작목반, 가톨릭농민회 등의 힘과 지혜를 모아 아이들에게 유기농 과자 꾸러미를 푸짐하게 선물로 주고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떠들썩하게 진행합니다. 눈치 채셨겠지만 어린이날 행사를 진행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 지역에는 어린이들이 많습니다.
세 번째는 인터넷 마을 공동체, ‘아나바다 밴드’가 실시간 운영된다는 사실입니다. 서로서로 농산물도 나누고 공동구매도 하는 등 각 마을의 소통창구이자 랜선 살림공동체 ‘아나바다’는 벌써 6년째 성업 중입니다.
네 번째는 귀한 자연산 버섯의 산지라는 점입니다. 송이, 능이, 싸리버섯 등을 어렵지 않게 맛볼 수 있습니다. 가을의 수입원이 되기도 하는 효자, 자연산 버섯이 우리 마을에서 많이 납니다.
다섯 번째 다양한 재능 기부를 우리 마을의 매력으로 꼽았습니다. 전래 놀이, 춤 세러피(테라피), 논살림 탐구 등의 재능을 지닌 어른들이 누구나 학교와 지역 내 교육기관의 마을교사로 활동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많은 주민들이 ‘솔맹이골’에 둥지를 튼 이유는 무엇일까요? ‘솔맹이골’에는 공교육의 메카 병설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가 다 있다는 사실입니다. 면소재지도 아닌 ‘리(里)’ 단위에서 공교육이 활발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은 현재 농산어촌 현실에서 매우 이례적인 상황입니다.
또 골짜기마다 흐르는 작은 계곡. 대야산과 속리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어디에서든 30분만 오르면 사방으로 펼쳐진 강산은 많은 이들의 눈과 발을 우리 지역에 묶어두었다고 합니다. 농업도 이곳에 정착한 이들에게는 참 중요한 요소였다고 합니다. 유기농과 일반농이 조화를 이루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농사를 지으며 ‘모든 농부는 위대하다’, ‘농업은 경이롭다’를 스스로 깨달아갈 수 있기 때문이랍니다.
저는 ‘솔맹이골’의 이러한 작은 몸짓에서 중요한 변화를 발견했습니다. 우리나라의 농산어촌이 살아남고,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어렴풋하게나마 보입니다. 2021년 2월 기준으로 충북의 11개 시군 중 3개 군을 소멸위험지수 0.2 미만으로 소멸 고위험으로 분류한 보도를 접했습니다. 지방소멸의 공포가 엄습해 오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근무하고 있는 ‘솔맹이골’의 이런 작지만 소중한 몸짓들이 다른 지역과 마을에도 희망의 불씨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