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미영 수필가
[동양일보]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좋다고 너무 편하게 대하다 보면 어느 순간 감정이 상하는 때가 있다. 좋아하는 사이일수록 지켜야 할 선이 있고 예절이 있다. 좋아하면 그만큼 존중해줘야 한다.
친해지면 쉽게 말을 놓는 일도 있다. 말은 어쩌면 친밀도를 측정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쉽게 반말을 하는 사람도 있고, 말을 쉽게 놓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반말을 해도 정감 있고 따뜻한 말이 있고, 존대함에도 어딘지 불편하고 어색하며 존중받는 느낌보다는 의례적인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높임말도 있다. 중요한 건 존중과 사랑을 갖고 사람을 대하고 있는가이다.
사람 사이가 나빠지면 전에 좋았던 일이 가장 기분 나쁜 일이 되어 버린다. 예를 들면 ‘언니’, ‘형’ 하면서 반말을 할 때 사이가 좋을 때는 붙임성이 있다. 귀엽다. 애교가 많다고 칭찬하다가 사이가 틀어지면 ‘말만 형이지 완전 반말이고, 제멋대로이고, 기본이 안 돼 있어’라고 말한다. 결국 가장 좋았던 점이 가장 나쁜 점이 되어 버리고 만다.
남편과 연애할 때 우리 아버지가 남편에게 말했다 “우리 딸이지만 성격이 당차서 힘들 수도 있어” 남편은 말했다. “아버님, 저는 그게 제일 맘에 듭니다” 그랬던 남편이 결혼하고 나서 나의 당찬 성격이 자기를 피곤하게 한다며 짜증을 낸다. 나의 가장 좋았던 점을 지금은 가장 나쁜 점이라고 스스럼없이 표현한다. 결혼할 때 가장 매력적이었던 점이 살면서는 가장 맘에 들지 않는다. 배려심 있고 따뜻함은 우유부단함으로,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은, 자기 맘대로 하는 독선으로….
중국 고전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사슴을 잡으러 갔을 때 사슴 새끼를 품고 있는 어미 사슴을 보고 차마 죽이지 못하는 신하를 보면서 왕은 저렇게 마음이 약해서 어디에 쓸모가 있나? 하면서 등용하지 못하고 한직으로 내보낸다. 그러나 왕자를 맡길 때는 그 사람을 찾는다. 의아해하는 신하는 묻는다. “아니, 마음이 약해서 쓸모가 없다는 사람에게 소중한 왕자를 맡기다니요?” 왕은 대답한다. 한낱 사슴 새끼조차도 저리 아끼는 사람인데 내 자식은 오죽 아끼랴 싶어서라고, 그래서 사람의 장점을 어느 시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단점이 되기도 한다.
두 나라가 팽팽한 싸움을 하고 있을 때 적진에 볼모로 잡혀 있는 아들을 삶아 보냈을 때 전쟁을 책임지고 있던 장군은 감정의 동요 없이 그 아들을 뜯어먹는다. 그 모습을 본 부하들은 한마음이 되어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그 일로 장군은 더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되고 승승장구한다. 왕을 위해 삶아진 자기 아들을 먹는 신하. 그 일은 두고두고 칭찬하지만, 막상 더 큰 일을 만났을 때 왕은 그를 두려워한다. 아들조차도 먹는 사람인데 그를 과연 믿을 수 있을까? 하며 왕은 그를 멀리하고 결국은 그 장군을 죽음으로 내몬다.
가장 좋았고 장점으로 꼽혔던 일은 후일 그를 무너뜨리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우리의 삶에서도 흔히 보게 되는 일이다. 너무 친해버리면 가장 좋았던 부분 때문에 감정 상하면 그 일이 거꾸로 발목을 잡는다. 그런 일이 무서워 사람과 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기보다, 좋은 사람일수록, 가까운 사람일수록 선을 지키고 존중하는 일이 중요함을 말하는 것이다.
결국 좋은 관계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이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