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욱 소리창조 예화 상임작곡가
[동양일보] “내 귀는 이제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내 나라를 위해 이 작품만큼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체코의 민족주의 음악가인 베드리히 스메타나(Bedrich Smetana, 1824-1884)가 교향시 <나의 조국>을 작곡하며 남긴 말이다. 스메타나는 <신세계 교향곡>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드보르작과 함께 체코의 대표적인 작곡가로 꼽힌다. 스메타나가 드보르작보다 17년 연상이고 그가 국민극장에서 지휘하던 시절 드보르작이 그 단원이었다 하니, 그의 말 대로 스메타나는 ‘체코 민족주의 음악의 시초’로 보인다.
1824년 보헤미아에서 태어난 스메타나는 음악을 좋아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접하게 된다. 이미 5세에 4중주단 연주에 가담, 6세에 대중 앞에서 피아노 연주를 할 정도로 음악적으로 친밀한 분위기에서 성장한다. 청년이 된 스메타나는 존경하는 음악가인 슈만과 리스트를 만나기 위해 아름다운 음악도시 프라하를 방문하게 되고 이후 리스트의 도움으로 악보를 출판하는 등 음악가로서 발돋움하게 된다.
스메타나는 인생에 우여곡절이 많은 작곡가 중 한 사람이다. 개인적으로는 세 명의 딸을 잃고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마침내 그의 청력까지 잃었으며, 대외적으로는 조국을 잃게 되었으니 참으로 기구한 삶을 살았다하지 않을 수 없다. 1848년 체코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통치 하에 있었다. 이에 저항하여 체코에서는 프라하 혁명운동이 일어나게 되는데, 당시 24세의 스메타나는 국민 의용군으로 가담하여 ‘국민 의용군 혁명가’, ‘자유의 노래’ 등을 작곡하는 등 민족운동 음악가로 성장하게 된다. 1866년에는 문인들과 함께 민족 오페라 <팔려간 신부>를 체코어로 작곡하는 등 민족문화운동의 선두에 서게 된다.
50세가 된 스메타나는 6년여에 걸쳐 교향시 <나의 조국(1874-1880)>을 작곡하게 된다. 교향시(Symphonic poem)는 낭만파음악에서 많이 사용되었던 표제음악의 일종으로 시적·회화적 표현을 교향곡으로 작곡한 음악으로, 쉽게 풀어 쓰면 ‘교향악으로 연주하는 시’라 하겠다. 리스트가 창시하였고 많은 낭만주의 작곡가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교향곡과는 달리 단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스메타나의 연작 교향시 <나의 조국>은 ‘뷔세흐라트’,‘몰다우’,‘샤르카’,‘보헤미아의 숲과 초원에서’,‘타보르’,‘블라니크’ 등 체코의 자연을 음악으로 표현해 낸 6개의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대중에게 가장 유명한 두 번째 교향시 ‘몰다우’는 체코의 수도 프라하의 강 블타바(Vltava)를 표현한 곡으로 독일어인 ‘Die Moldau’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음악을 들어보면 작은 물줄기를 표현하듯 플롯과 클라리넷의 연주가 잔잔한 움직임으로 시작되어 곧 커다란 물줄기가 된 듯이 관현악 연주로 ‘몰다우’의 주제 선율이 연주된다. 스메타나는 연주 당시 청중에게 이 곡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 바 있다.
“이 곡은 작은 두 샘에서 발원하였고, 차가운 강과 따뜻한 강의 두 줄기가 하나로 모여 숲과 관목들을 지나 농부의 결혼식, 밤에 달빛을 받으며 추는 인어들의 원무, 주변에 바위가 있고 가운데 솟은 성과 궁전과 폐허를 지나가는 블타바 강의 흐름을 나타내었다. 블타바는 성 요한의 급류에서 소용돌이치다가 프라하를 향해 잔잔히 흘러가며 뷔세흐라트 성을 지나 저 멀리 라베 강과 합류하며 장엄하게 사라진다.”
이 곡을 듣다보면 분명 자연을 표현한 표제음악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를 마음속에 복받쳐 오르는 뜨거운 감정을 경험할 수 있다. 체코의 민족 정서를 담은 이 교향시는 지금도 스메타나의 서거일인 5월 12일이면 프라하에서 해마다 연주된다고 한다. 세계의 정세가 불안한 요즈음, 민족의 저항을 담은 음악 <나의 조국>을 들으며 누군가 또 누구나 갖고 있을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헤아려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