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 김미나 기자]‘철학하는 삶’을 위한 2기 동양포럼 운영위원회는 지난 22일 동양일보 회의실에서 ‘새 대통령에게 바란다’를 주제로 포럼을 가졌다. 운영위는 이날 ‘진단’, ‘치유’, ‘희망’을 키워드로 이야기를 나눴다. 포럼은 김양식 청주대 연극영화학부 교수의 사회로 박병기 한국교원대 윤리교육과 교수,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가 참석했다. 이날 대화의 내용을 요약, 정리해 싣는다.



●주제 새 대통령에게 바란다

●날짜 2022년 3월 22일

●참석 김양식 청주대 연극영화학부 교수(운영위원장) 박병기 한국교원대 윤리교육과 교수(주간)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주필)

●정리 김미나 차장

 

김양식 교수
김양식 교수

▷김양식 교수

이번 대통령 선거는 한국 사회의 문제점이 매우 극명하게 표출된 선거였습니다. 극한 진영 대립이라든가 예전 선거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젠더 문제도 크게 부각됐었고요. 아주 고질적인 지역과 세대 갈등 문제도 부각이 됐었던 선거였습니다. 그래서 이번 선거를 통해 우리 사회를 있는 그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이번 선거를 지켜보면서 우리 사회가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말씀해 주시죠. 먼저 박 교수님부터 말씀해주십시오.

 

박병기 교수
박병기 교수

▷박병기 교수

이번 대통령 선거는 여러 가지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동하면서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분출시킨 선거였다고 진단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최소한 형식적으로는 민주주의가 구현된 선거였습니다. 민주주의를 다수 시민의 표를 얻는 사람이 대통령으로 뽑히는 것이라고 전제한다면, 비록 0.73%였지만 더 많은 시민들의 표를 얻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점에서는 형식적 민주주의는 구현한 선거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내용적으로는 정말로 민주주의 정신에 맞는 선거였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국민의 과반수 지지는 누구도 받지 못했고, 거의 반반으로 나뉘어 상대방을 동료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혐오 발언들을 막 쏟아내는 그런 선거가 됐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질적 수준에 있어서는 상당히 부끄러운 선거였습니다. 이렇게 이중적인 진단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김양식 교수

실제 선거 내용을 보면 얼마나 좋은 대통령을 뽑느냐가 아니라 우리 편 대통령을 뽑기 위한 극한 정치투쟁적인 선거였습니다. 그 자체가 큰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 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정세근 교수
정세근 교수

▷정세근 교수

진영 대립과 지역 대립은 있던 것인데 젠더와 세대 대립은 새로운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젠더 문제는 대학 1학년들 토론 수업에서 성별로 극명하게 나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초기에는 군 가산점 1점 갖고 그랬고, 이제는 이제 여가부 폐지 문제 갖고 나뉩니다. 어떤 여학생이 그렇게 표현을 하더군요. 마치 스포츠 게임 같다. 자기가 응원하는 팀은 무조건 이겨야 하는 것이라고요. 스포츠처럼 즐기면서 하면 좋겠는데 응어리가 남는 싸움이어서 안타깝습니다.

혐오 발언은 정말 심하더라고요. 어떤 카톡에서는 이쪽을, 어떤 카톡에는 저쪽이 주류가 돼 반대 발언을 하질 못하더군요. 결국 남을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나도 모자란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 상식을 믿듯이 남의 상식도 믿는 그런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김양식 교수

다음 의제로 넘어가겠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우리 사회를 병든 사회, 위험한 사회로 진단하곤 합니다. 이는 이번 선거에서도 여실히 증명되었습니다. 그래서 선거 과정에서 여야 할 것 없이 모두 국민 통합을 주장했고 대통령 당선자도 통합을 강조하고 있는데, 과연 통합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어떻게 해야 통합할 수 있는 것인지 좀더 근본적인 문제를 짚어줬으면 합니다. 이번에는 정 교수님 먼저 말씀 해주시죠.

▷정세근 교수

김양식 교수님이 제시하신 어휘 ‘진단, 치유, 희망’이 참 좋습니다. 다행히 절망이 아니고 희망이더군요. 해답을 강요하는 것 같아서 좀 그랬지만, 사실은 이 사회를 병들었다고 보는 것 그 자체가 기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아시다시피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사회를 병든 걸로 보고 그걸 치유하겠다고 나온 학파 아닙니까. 저는 쉽게 얘기합니다. 프로이드 더하기 마르크스가 프랑크푸르트 학파라고요. 마음이 병든 게 아니라 사회가 병들었다, 그래서 치유책으로 마르크스적인 방법을 선택했죠. 그런데 ‘왜 프랑크프루트냐’가 중요합니다. 유럽 자본주의의 본산지가 프랑크푸르트죠. 유럽에서는 모든 비행기가 다 프랑크푸르트로 모이니까요. 자본가들이 돈을 내고 이 병을 고쳐보자고 한 겁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묻고 싶습니다. 우리 자본가들은 우리의 이 병든 사회를 위해서 돈 한 푼 내놓으셨는지요? 그 이면에는 사회가 병들면 자본가들도 돈 못 번다는 생각이 있어요. 이런 걸 고쳐야지 돈도 더 벌 수 있다는 얘기죠. 미국의 소로스 같은 사람들이 세금을 더 많이 내자 하는 까닭이 뭡니까? 사회가 불안해지면 불안 비용만 세지고, 그러니까 돈 많은 사람이 세금 많이 내서 이 문제를 진단해보고 치유해보자는 거 아니겠습니까. 근데 우리 사회에는 그게 없어요. 이 사회는 돈만 벌지, 번 돈을 진단하고 치유하는 데 써볼 생각이 없는 것 같아요. 그 점에서 천민자본주의라는 말이 틀리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병든 것도 모르면 치유할 수 없지 않습니까? 우리 사회의 문제는 자기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실체적 진실이란 단어가 유행하는 사회가 됐을까요. SNS에 떠다니는 가짜 뉴스도 그렇고, 여러 가지 판단의 근거들을 저는 정말 모르겠어요. 그런데 왜 우리는 왜 다 안다고 그럴까? 그게 참으로 걱정스럽습니다. 달리 얘기하면 우리가 너무 정치 편중의 사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박병기 교수

통합을 이뤄야 된다는 당위적 요청들에 대해서는 다 동의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 통합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 라는 것에 대해서는 양측이 제대로 된 의견을 못 내놓고 있는데 사실상 내놓기도 힘들 것 같아요. 통합의 출발점은 상대방을 인정하고 존중해 주고자 하는 자세와 실천입니다. 물론 우리 사회만 그런 것은 아니고 마사 뉴스바움이라는 미국의 윤리학자이자 법철학자가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날 잠을 못 이루면서 어쩌다가 미국이 이렇게까지 됐는가 그렇게 한탄하면서 책을 쓴 게 있거든요. <타인에 대한 연민>이라는 책인데, 거기 보면 미국 사회는 우리보다 더 심하면 심했지 결코 못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만일에 미국에 희망이 있다면, 그래도 그런 철학자가 밤새워서 고민하면서 어떻게 하면 서로 미워하는 사람이 상대방을 인정하고 동료시민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는 바로 그 사실이겠지요. 우리는 지금까지 두부 자르듯이 딱 잘라서 이쪽은 보수고 이쪽은 진보라고 나누곤 했어요. 저 개인적으로 봐도 어떤 면에 있어서는 진보지만 어떤 면에서는 보수적이기도 합니다. 한 개인에게도 그 두 가지가 공존해야 마땅한데, 왜냐하면 한편으로는 옛 것을 이어받는 온고(溫古)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새로운 시대에 맞게 바꿔가는 지신(知新)을 함께해가면서 살아가고 있거든요. 보수와 진보라는 것이 서로에게 의존해서만 성립할 수 있는 상호의존적 개념들이라는 사실을 다시 성찰해서 재설정하는 작업들이 쉽지는 않겠지만, 진정한 통합으로 가는 첫 번째 디딤돌이 아니겠느냐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김양식 교수

어쨌든 이번 정권 교체기에 성찰의 시간이 참 많이 필요할 것 같은데,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 교수님

▷정세근 교수

구체적으로 얘기한다면 ‘습관화된 적’이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일제강점기에 당연히 공적이 있는 거고, 그다음 반공 시절에 빨갱이가 있는 거고, 민주화 투쟁 시절에 독재자가 있는 거고요. 그런데 우리 사회가 이제는 그런 독재자가 나올 수 없는 시스템이거든요. 즉 옳고 그름을 넘어 모른다고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지식인의 숙명이 이래도 저래도 욕먹는 것이거든요.

▷김양식 교수

지금 이야기를 나눌수록 우울한 말들 뿐인데, 과연 우리 사회가 희망이 없는 것일까요. 희망이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새 대통령은 어떤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까요. 박 교수님 의견 좀 듣고 있습니다.

▷박병기 교수

대통령 당선인이 본인을 지지해 주는 50% 이하의 국민들을 대표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제는 ‘전체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이다’ 라는 인식을 분명히 가질 필요가 있다는 점을 우선 강조하고 싶습니다. 한 가지만 덧붙인다면 이제 우리가 꽤 먹고 살 수 있게 됐고 경제 수준도 꽤 높아졌지만, 그럼에도 우리 사회의 빈부 격차가 점점 더 심화되고 있는 것도 명확한 사실이거든요. 이 문제를 좀 정확하게 인식해서 5년 동안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최소한 그 격차를 더 넓히지는 않는, 한 뼘이라도 좀 좁히는 방향으로 모든 정책을 생각하고 그렇게 해주었으면 합니다. 그게 곧 진정한 국민 통합으로 갈 수 있는 첫걸음일 것입니다.

▷김양식 교수

정 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세근 교수

빈부 격차가 이제 지역 격차로도 나타나게 됩니다. 사람이 사는 지역에 따라 신분이 결정되는 것이죠. 집 있는 서울 사람과 집 없는 서울 사람, 서울에 집이 있는 사람과 지방에 집이 있는 사람은 이제 다른 경제적 구조 위에 서게 됩니다.

희망이 보인다면 과거에는 10년 주기로 바꿨다면 이제는 5년마다 바꾸려고 우리 국민들께서 이렇게 선택하는 것 아닌지 하는 희망을 가져 봅니다.(웃음) 짜증이 나니까 5년마다 바꿔보자는 것이지요. 진짜 책임을 지는 선택을 하는 것이 미래의 지도자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쪽으로 쏠렸다고 쏠림을 선택하는 거는 지도자가 할 일은 아니에요. 그건 행정부가 알아서 하면 되는 거예요. 지도자는 정말 비등비등할 때 어느 쪽으로 자기가 책임지고 선택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양식 교수

지금까지 제기됐던 여러 문제에 대한 답은 국민들의 머릿속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런 국민들 머릿속에 있는 지혜를 어떻게 끌어내고 정책화시키고 상호 공유를 할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을 만들어 가느냐가 핵심일 것 같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다양한 세대 다양한 진영들을 존중해 주고 그들을 대화의 장으로 끌고 나와서 토론하고 어떤 원칙들을 만들어가는 그런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혹시 못 다한 말씀이 있으면 한 마디씩 간단하게 해주시죠.

▷박병기 교수

그 말씀에 이어서 저나 정 교수님이 최근에 관여하고 있는 일 중에 하나가 이번 정권에서 여러 개의 법안들이 나오고 있는데 처리되지 않고 있는 법이 민주시민교육법이에요. 왜 그렇게 안 됐는가 하면 인성교육은 보수 정권의 교육이고 민주시민 교육은 진보 정권의 교육이다라고 낙인찍힌 배경 때문입니다. 인성교육법은 워낙 당시 인성교육 문제가 심각하니까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가 됐어요. 그런데 민주시민교육법은 이게 진보정권의 교육이라는 딱지가 붙으니까 한쪽에서 강력히 반대해가지고 통과가 되지 못하고 있어요. 이번 정권이야말로 여야가 합의할 수 있는 그런 지점들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의견교환을 통해 법을 통과시킬 필요도 있겠다는 것입니다. 학교 시민교육보다 오히려 일반시민들이 토론을 일상화할 수 있는 제도적 지원을 하는 그런 시민교육법 말입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시민 교육보다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시민 교육이 더 필요한 시대임을 절감하고 있잖아요. 오늘 우리가 갖고 있는 이런 토론의 장을 좀 더 확장해서 시민 토론회장으로 만들 수 있는데, 그런 일을 지원해주고 격려해주는 법과 분위기가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당선인에게 인문정신에 관한 관심을 부탁하고자 합니다. 사실 우려되는 지점 중에 하나가 이 분이 인문학 전반에 대해서 상당히 왜곡된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먹고 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상태이기 때문에 결국 남는 것은 삶의 의미 물음 같은 것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물음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폭넓게 탐구해 보고 같이 생각해 보고 그러는 게 곧 인문학입니다. 시민의식 속에서 인문정신이 갖는 고유하고 소중한 위상과 역할에 대해서도 충분히 주목해 주는 그런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성장 이데올로기에 함몰된 대통령은 구시대의 대통령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양식 교수

특히 지난 몇 년 사이에 국가의 허리 역할을 하는 중산층의 하향평준화가 심각한 수준입니다.

▷정세근 교수

이제는 새로운 프레임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전통 철학을 공부하기 때문에 보수주의자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제가 보기에 전통 철학자들은 다들 진보적인 발언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보수입니까, 진보입니까. 그러니까 이게 그렇게 딱 부러지게 구별이 되는 게 아닙니다. 공자도 그 당시로서는 가장 진보적인 얘기를 한 것이고, 그렇다면 전통 철학을 한 사람은 보수주의자가 될 수 없죠. 그런 점에서 저는 ‘사건을 기사화하지 않고 기사를 사건화한다’는 것처럼 제발 ‘사실을 사건화하지 않고 이념을 사건화’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거는 이제는 벗어버리고, 동양 윤리의 큰 장점인 ‘옳다, 그르다를 넘어 모른다’는 영역이 강조됐으면 좋겠습니다.

▷김양식 교수

오늘 감사합니다. 이번 대통령 선거를 지켜보면서 진단, 치유, 희망을 키워드로 해서 포럼 시간을 가져봤습니다. 우리나라가 많은 문제점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또 희망이 없는 건 아닙니다. 우리 역사가 증명하듯, 한국인의 잠재적 능력은 무한하니까요. 누구를 투표했든 새 대통령이 새로운 나라 새로운 희망을 펼칠 수 있는 그런 미래가 되기를 기원하면서 오늘 포럼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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