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옥 수필가
[동양일보]산책 가는 길이다. 또르르 돌멩이 하나가 내 앞을 앞질러 저만치 굴러간다. 동글동글하니 공깃돌 하면 마침맞겠다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는 아이들 놀잇감이 별로 없었다. 주변에 널려 있는 돌멩이로 공기놀이, 땅따먹기, 비석치기, 사방치기를 하며 땅거미가 질 때까지 놀았다. 돌 하나가 동무와 정을 다지며 마음과 몸을 부리는 쓸모 있는 도구였다.
어릴 적 쓸모 있던 돌멩이가 이제는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다. 그런데 그 쓸모없는 돌멩이가 자꾸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장자는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없다‘고 하면서 ”사람들은 쓸모 있는 것의 쓰임은 알고 있지만, 쓸모없는 것의 쓰임은 알지 못하고 있다“고 하였다. 쓸모가 없어 보이는 돌에서 쓸모 있음을 찾아보리라.
잡돌이며 허드레 돌이라고 일컫는 버력을 만났다. 쉽게 버려지고 잡다하게 취급하는 별 볼 일 없는 돌이다. 하지만 방파제나 수중 구조물을 설치할 때는 물밑에 버력이 없어서는 안 되는 모양이다. 가히 무용지용無用之用이다.
산에 가면 돌탑을 흔히 본다. 커다란 돌탑도 있지만, 돌멩이 여남은 개를 쌓은 것도 있다. 돌을 하나하나 정성껏 올리는 것은 신에게 하는 기원이며 믿음의 발현이다. 하찮은 돌멩이가 신께 이어주는 다리가 되는 것이다. 이는 돌이지만 돌이 아니다.
어떤 사물에 돌이라는 접두사가 붙으면 품질이 떨어지거나 야생으로 자라는 것을 나타낸다. 돌감이니 돌배니 하며 낮잡아 보나 여러 가지 민간요법의 약효로 보면 쓸모없음이 쓸모 있음일 것이다. ‘돌’을 붙여 함부로 얕볼 일이 아니다.
돌은 쉽게 허물어지거나 깨지지도 않아 견고함의 은유로 많이 쓰인다. 초석을 다진다거나 반석에 올린다고 하지 않던가. 실제로 주춧돌이 떡하니 큰 집을 떠받칠 정도이니 그 위용은 알만하다. 얕은 생각으로 돌의 쓸모없음을 이야기했던 것에 변명이 궁색하다.
돌은 강가에 있거나 계곡 주변에 있을 때는 그냥 돌이다. 길가에 버려진 채로 뒹굴면 쓸모없는 채로 비바람에 닳아 없어질 것이다. 하지만 의미 있게 쓰이면 그것은 쓸모 있는 존재다. 주춧돌, 디딤돌, 누름돌, 불돌, 귓돌, 밑창돌, 부싯돌, 떡돌 등이 그것이다.
내가 그 돌이 되기로 마음먹은 것은 얼마 전이였다. 한 작은 단체에 총괄하는 자리를 맡으며 돌이 되겠다고 선언을 했다. 반석 위에 올려놓겠다는 거대한 공약이 아니었다. 화롯불이 쉬 사위지 않도록 눌러놓는 불돌처럼 덮어주고 다독다독하려는 심산이었다. 내가 돌을 자처하니 너도나도 나선다. 쓸모 있는 귓돌과 밑창돌이 되겠다고 한다. 결정적으로 쐐기돌을 박겠다는 분의 말씀에 울컥한다. 이제 돌을 단단히 연결해 줄 시멘트 한 포를 풀어 잘 개어야겠다. 쓸모 있는 돌이 허실되지 않게 흙손으로 고루 펴 바르리라.
내 안에도 돌 네댓 개 들여놓아야겠다. 삐죽삐죽 올라오는 용심을 꾹꾹 누르려면 누름돌이 필요하고. 가뜩이나 잊기를 잘하는 요즈음이니 생각그물에 걸린 조각 사유가 달아나지 않도록 늘어뜨릴 앞돌 몇 개가 있어야겠다. 더불어 구들장처럼 한번 데워지면 오랫동안 식지 않는 불돌도 장만해야지. 그 불돌로 주변을 늘 따뜻하게 해 줄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산책길에 앞질러 굴러가던 잔돌도 억겁億劫의 시간을 거쳐 그 자리에 왔을 것이다. 노경에 들어 세상에 하등 쓸모없는 내가 돌의 쓸모없음을 어찌 이야기할까.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없다.’ 돌에서 경전을 깨우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