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초시 전 충북연구원장

정초시 전 충북연구원장

[동양일보]함석헌 선생은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한국역사를 꽃 파는 처녀에 비유한 적이 있다. 한국역사를 가엾은 처녀거지의 모습으로 길 가에 앉아 꽃을 사주기만을 기다리는 연약한 처녀에 비유하며, 철저하게 타자에 의해 지배받는 역사로 그렸다. “숙명관은 압박당한 자의 철학이요 생명의 갇힘이다”고 외치며 숙명론적 역사관에서 벗어나야 하며, 우리의 갇혔던 의식에서 해방돼 생각하는 백성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8월 31일 충북도는 국회 소통관에서 164만 충북도민의 염원을 담아 ‘바다 없는 충북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는 단순하게 충북이 한국경제가 걸어온 길이었던 수출지향적 산업화전략으로 항만중심의 성장경로에서 소외당했으니 적절한 경제적 보상을 해야 한다는 차원이 아니었다. 누가 꽃을 사주기만을 바라는 불쌍하고 연약한 꽃 파는 처녀가 아니라, 충북이 한국사회의 발전을 주도하겠다는 의지의 선언이었다. 숙명론적 패배주의에서 벗어나 충북 고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충북의 자율적 발전을 선포하는 날이었다. 백두대간권의 저발전, 농촌소멸, 호수 주변지역의 과도한 규제로 인한 주민들의 고통 등의 부정적 요소들에 대한 한탄, 충북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잠재적 발전요소들의 과소평가로 인한 충북인의 심리적 위축 등을 충북인 스스로 극복하고자 하는 선언이었다.

과거 민선 5기 출범 때만해도 충북인의 마음 한 가운데는 ‘3% 충북’이라는 숫자의 덫에 갇혀있었다. 신기하게도 경제지표 뿐 아니라 많은 정치․사회․문화, 심지어 범죄 관련 지표 등도 3% 언저리에 머물러 있을 정도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선 5~7기는 경제 지표를 4%로 부상시켜 충북인의 자존심을 일거에 해결하려는 전략을 취했으며, 상당한 정도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아직 가야할 길은 멀다. 우리 스스로 의식의 개혁, 즉 숙명론에서 벗어나는 노력이 필요하며, 충북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이 자연적 혹은 여러 가지 정치적 이유 등으로 과도하게 제한돼 왔다는 역사적 사실을 깨달아야 하며,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충북인 모두가 하나가 돼야 한다는 점을 공감해야 한다. 충북의 가치를 드러낼 수 있는 대표 브랜드를 만들어야 하며, 충북이 추구하는 가치가 글로벌에서도 통할 수 있는 보편적 기준이 되는 데까지 꿈의 지경을 넓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164만 충북인 모두의 협력의 미학이 필요하다.

첫 발을 특별법 제정으로 시작한 것은 매우 현명한 선택이다. 왜냐하면 법은 모든 국민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규준임과 동시에 우리의 의지와 생각이 객관적으로 인정받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입법과정에서 앞으로 험난한 과정이 예상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충북인 모두가 우리의 현재 위치와 상황을 자각하고 지혜를 모으며, 중앙정부에 구걸하는 차원이 아니라 당당하게 우리의 요구와 주장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다는 점이다. 영웅적 개인의 리더십으로서가 아니라 도민 모두의 생각과 꿈이 실현되는 차원에서 이뤄질 때, 충북은 사람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곳이 될 것이다.

이러한 기초 위에 충북 레이크파크 르네상의 핵심가치인 ‘환대(Hospitality)’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자크 데리다에 의하면 환대란 사회 안에서 타자의 자리를 인정하는 행위로, 환대받는 다는 것은 타자를 구성원의 하나로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환대에는 충북 외부인에 대해서 뿐 아니라 충북 내부에서 댐 수변지역 주민 등 내부 구성원의 권리가 동등하게 인정돼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환대가 우리 사회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먼저 충북인이 높은 자존감을 가지고 우리의 시선이 더 높은 곳을 향해 있어야 한다.

이것을 위한 수단이 특별법이고 레이크파크 르네상스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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