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순 약사 ·포어스 대표

[동양일보]책과 벗하기 좋은 가을이다. 독서의 계절인 만큼 책을 주제로 한 여러 가지 기사가 나올 터이다. 그중 종이책이 숲 소멸을 부추기므로 제작 금지해야 한다는 기사가 또 등장할지도 모른다. 그런 기사는 책을 사랑하는 이들과 종이책을 통해 성장했던 아날로그 세대들을 적잖이 당혹스럽게 한다. 책 만드는 종이를 아껴 나무를 보호할 수 있다는 단순 논리로만 거론될 문제일까? 과연 전자책이 종이책의 친환경적 대안일까?

인간이 컴퓨터 같은 두뇌를 소유하지 않는 이상, 종이는 필수 불가결한 제품이다. 전자기기는 전기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므로 종이가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제지업은 산림 파괴와 자원 대량 소비는 물론, 온실가스 배출로 환경오염에 한몫하고 있어 문제다. 종이 1톤은, 30년생 나무 17그루·에너지 약 1만kWh·물 8만6000L 정도를 들여 생산되고, 폐기까지의 전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약 6톤을 배출한다. 겨우 A4용지 한 장 제작에 10L의 물이 필요하고 탄소 2.8g이 배출된다. 이렇게 제작된 종이를 우리나라에서만 한 해 약 800만t 소비한다. 30년생 나무 약 1억 그루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중 올 6월 지방선거에서만 1만2853t이 사용돼 서울식물원의 1.4배나 되는 나무 21만여 그루가 소실됐다. 더구나 선거용 종이 대부분은 코팅 등의 문제로 재활용이 불가해 오염을 가중시킨다. 종이 영수증은 우리나라에서만 한 해 약 120억 건 발행돼 나무 12만 그루를 사라지게 하며 온실가스 2만t을 배출한다. 2000년 이후 해마다 지구에서 우리나라 전체 산림 면적과 비슷한 650만 헥타르(ha)의 산림이 소실되고 있는 것이다. 나무를 새로 심어도 오래된 삼림 역할을 하기까진 긴 세월이 필요한데, 지구 육지 면적의 약 30%인 산림 파괴로 탄소 흡수원이 소멸되는 중이다.

이제라도 각국 정부 차원에서 종이가 과도하게 낭비되는 부분을 정확히 산출해 홍보하고, 인식 개선을 유도하여 종이를 함께 절약해야 한다. 이면지 활용 등을 통해 A4용지 4박스를 아끼면 30년생 나무 한 그루를 살릴 수 있다. 그 외 영수증과 각종 고지서는 전자와 메일로 받고, 대나무 화장지류(풀인 대나무는 90일이면 자라고 폐기 시 생분해 빠름)를 사용하며 우유갑·멸균팩 같은 질 좋은 종이를 따로 분리배출하고, 일회용 종이컵과 재활용 안 되는 포장지를 쓰지 않는 등 작은 실천으로도 숲을 보호할 수 있다. 그런데 친환경을 위해 플라스틱·비닐이 종이로 자주 대체되어 긍정적 평가를 받는 요즘, 비닐봉투보다 종이봉투 생산에 약 4배의 에너지가 더 필요하고 운송 시 탄소 배출도 더 많으며, 종이봉투가 4회 이상 사용돼야 비닐보다 더 친환경적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그나마 다행인 건, 현재 식물 케나프(kenaf)·사탕수수 찌꺼기 버개스(bagasse)·코코넛 껍질·대나무·과일 껍질·짚·해조류·석재 가루 등으로 만든 비목재 친환경 종이가 전 세계 종이 생산량의 약 10%나 차지한다는 점이다. 아직 비싼 게 좀 흠이지만. 이런 기술이 계속 발전하는 추세에 종이 낭비까지 줄인다면 종이책 존폐를 논할 이유가 없어지지 않을까?

사실 종이책 존폐는, 전자책과 제작부터 폐기까지 전 과정을 비교 분석해 정말 친환경적 대안인가를 확인한 후에도 공론화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종이책 제작용 나무는 일부분 인공림을 조성해 얻는다. 또한 전자책은 매년 최소 25권 읽혀야지만(2019년 우리 국민 독서량은 연간 6.1권) 종이책보다 자연을 덜 파괴한다. 게다가 폐기 문제까지 비교하면 어떨까? 출판업계도 자성해, 무분별한 출판을 자제하고 제작과 폐기의 전 과정에서 친환경을 추구해야 한다. 인쇄는 컬러보다 최대 2도·흑백을 이용해 에너지를 절약하고, FSC(국제산림관리협의회) 인증받은 가벼운 재생 종이·식물성 기름 잉크 사용과 여백 최소화를 지향해야 한다. 반면 화학물질 사용·비닐코팅 등은 지양해야 한다. 우리도 종이 절약·책 돌려가며 읽기·중고 서점과 도서관 이용하기 등을 실천하면 종이책이 환경오염원이라는 불명예를 씻고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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