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상 충북도 양성평등정책팀장
[동양일보]성인지 감수성(gender sensitivity)이란 남성과 여성이 생물학적 뿐만 아니라 사회적 경험의 차이로 인해 서로 다른 이해나 요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양성평등 구현을 위하여 무조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기 보다는 남녀모두가 성인지 감수성을 갖고 주변을 이해하는 것이 훨씬 목표 접근이 쉽기 때문이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평등에 대해서 잘못 이해하게 되면 낭패가 될 수 있다. 평등을 모두에게 아주 똑같이 대하는 것이라고 이해한 나머지 평등해지기 위해서 한쪽을 채우려면 다른 한쪽은 비워야 한다는 제로섬 게임으로 인식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그런데 진정한 평등이란 배려가 반영된 형평이다.
이는 우리가 흔히 보아왔던 그림을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담장 너머의 광경을 보려고 키가 큰 어른과 키가 작은 어린아이가 있는데 어른은 키가 커서 그냥 서 있기만 해도 담장 너머를 볼 수 있지만 키가 작은 아이는 발을 딛고 올라갈 발판이 필요하다. 이렇듯 필요한 사람에게 발판을 주는 것이 형평이고 배려가 있는 평등이다. 누구나 키, 외모, 나이, 성별,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은 다 다르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불편을 겪지 않도록 든든하게 지지해주는 것이 진정한 평등일 것이다. 아이에게 발판을 제공한다고 해서 어른은 무엇인가를 빼앗기지 않아도 된다. 함께 나누어 쓰고 공유한다는 의미에 가깝다.
우리 집에는 나를 제외한 남성 3명이 있다. 그들은 맞벌이 가정에 걸맞게 분리수거를 도맡아하고 설거지 빨래를 할 때도 있다. 그래서인지 이들은 우리나라는 양성평등이 어느 정도 이뤄졌다고 생각한다. 가정에서 혹은 내 주변에서 완벽히 평등을 이루고 있을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 사회적인 양성평등의 과업이 다 이뤄졌다고 볼 수는 없다.
과거에 비해서 성평등 인식도 변화되고 성차별의 요소들도 많이 개선됐으나 우리가 꿈꾸는 성평등의 사회로 가려면 더 노력이 필요하다. 한 나라 안에서 남성대비 여성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수치화한 우리나라 ‘국가성평등지수’(2020년기준, 2022년발표)는 100점 만점에 74.7점으로 비교적 양호하다고 생각할 수는 있겠으나 여성 국회의원의 비율 등 의사결정을 하는 분야에서의 성평등 수준은 37점에 불과했다. 성별 임금격차도 크다. 남성이 100만원을 받을 때 여성은 67만 7천원을 받는다. 이렇듯 사회 곳곳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생각과 달리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2019년 OECD에 따르면 성차별은 전 세계 GDP합계의 75%에 이르는 경제 손실을 가져온다고 한다. 성평등한 국가에 사는 남성은 그렇지 못한 국가에 사는 남성보다 행복할 확률이 두배, 기대수명도 더 길다고 한다. 인류의 절반이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에 대한 차별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인류가 가진 잠재력이 절반밖에 발현 시킬 수 없다.
성평등은 단지 ‘여성에게만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모두 차별받지 않을 기본권을 가지고 있다. 국제사회가 성평등을 이루고자 노력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성평등은 사회적으로 이로운 가치이며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도움되는 행복으로 가는 열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