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묵 청주대 명예교수

김형묵 청주대 명예교수
김형묵 청주대 명예교수

[동양일보]4월 5일은 달력에 식목일, 청명, 6일은 한식이라고 적혀있다. 이날 친구들과 우암산을 오르면서 대화 중 한 친구가 오늘 한식날에 부모님 산소를 가야 하는데 엊그제 미리 다녀왔다고 자랑삼아 하는 이야기에 옆 친구도 동감하듯 같은 대화로 연결한다. 한식날에 꼭 가야 하나? 되물으니 물론이지. 서슴없는 답하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

4월 봄이 되면 추운 겨울 동안 못 가본 조상 산소를 돌아보는 풍습은 당연하다. 그러나 달력의 한식날을 우리는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는가? 조상 때부터 있었으니까 그날을 기념해야 하는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소동파 시에 한식(寒食)이 나타나는데 춘추시대 때 진(晉) 나라에 여희의 난으로 진문공은 신하 5명과 함께 19년 동안 도피했고 개자추(介子推)는 온갖 고생을 하며 진문공을 공경했는데 신하 중 욕심보가 돈과 보물을 훔쳐 달아나서 호된 굶주림에 처할 때 개자추는 넓적다리 살을 베어 진문공에게 먹였다고 전한다. 사관들은 이러한 충성 때문에 진문공이 다시 왕으로 옹립됐다고 한다.

진문공이 왕이 되자 서로 공신들이 자리다툼을 했다. 끝까지 충성한 개자추는 도피 시 거지 옷과 같은 살림살이를 버리고 궁으로 가는 진문공을 보고 성군의 희망이 보이지 않음을 알고 노모를 모시고 면산에 살았다고 한다. 왕이 된 후 직언만 하는 개자추에게만 벼슬을 주지 않았는데 후에 깨달아 벼슬을 주려 수차례 요청하였으나 거질해 산불을 놓으면 밖으로 나올 것이라 하여 불을 놓았지만 노모와 함께 개자추는 불에 타 죽었다 (BC 636년).

왕이 개자추의 충심을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불을 피우지 말고 찬밥을 먹으며 충신을 기억하자고 한식날을 정하였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한식날이 필요한가?

눈을 감고 깊이 생각해 보자. 이제 우리나라는 세계 10대 선진국답게 구습을 버려 한식이란 것을 달력에서 과감하게 지우고 우리 선조들 중 위대한 충신이 얼마나 많은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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