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서 온 박기래 집사 집에서 1929년 38명으로 시작... 독립 운동 지원 추정
중심가 서문동서 52년, 청주 대표 교회 자리매김... 봉명동 이전, 지역사회 기여
박명룡 목사, 국내 교회 '기독교 변증' 소개... "청년에 용기주는 일, 시대적 소명"

박명룡 서문교회 담임목사.
일제 치하에서 탄생해 94년간 시대의 위기 극복과 국가 발전을 위해 기도해 온 청주 서문교회 전경.

[동양일보 이정규 기자]1929년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가 탄압의 강도를 높이던 바로 그 시절 충북 청주에 목사도 없는 한 교회가 세워졌다.

교회 집사인 박기래씨가 38명의 장년(성인)들을 모아 본정3정목 16(현 청주 성안동 북문로 1가) 자신의 집을 예배당으로 삼아 개척한 것이다.

박기래 집사는 만주에서 청주로 넘어 온 인물인데, 독립운동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는 이야기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임시 예배당에 모인 38명은 매일같이 독립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고 때로는 총독부 눈을 피해 독립운동 후원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해 4월 28일 청주교회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이 모임은 훗날 서문교회로 명칭을 바꿔 오늘에 이른다.

서슬퍼런 일제 탄압 속에 꽃피운 서문교회는 더 단합해 독립을 위한 기도에 힘썼다.

서문교회는 개척 후 2년, 1931년 4월 29일 청주의 중심부인 서정4정목(현 성안길 국민연금 건물 자리, 옛 서문동)에 건축 부지를 마련하고 그 해 9월 성전을 준공했다.

가장 번화한 거리에서 52년동안 청주를 대표하는 교회로 자리매김한 서문교회는 서문동 시대를 마감하고 이전을 결심한다.

1986년 3월 서문동 교회를 매각한 서문교회는 현재 위치인 청주시 봉명동 188에 교회부지 4529㎡(옛 1370평)을 확보하고 같은 해 12월 7일 입당 예배를 드렸다.

그로부터 다시 37년이 흘렀다. 국내 미자립 교회 37개와 40개의 선교단체 기관을 후원하고 있는 서문교회는 세계 각국에 48명의 선교사를 파송, 지원하고 있다.

지역 사회 섬김 운동도 활발하다. 매월 1회 어려운 40가정에 반찬봉사를 하고 성탄절과 설날, 추석에는 복지시설에 과일, 쌀, 선물 상자를 전달하고 있다.

청주 봉명초에 해마다 어린이 장학금을 전달하고, 충북대 학생을 비롯해 지역 청년과 중고등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

교회 6개 주차장 중 5개는 지역 주민들에게 무료로 개방한다.

올해 가을부터 '봉명 청소년 축제'도 개최할 계획이다. 건전한 청소년 문화를 이뤄가는데 긍정적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다.

2017년 11월, 12대 담임목사로 박명룡(56·사진) 목사가 취임하면서 서문교회는 더 큰 도약의 나래를 펴고 있다.

박 목사는 미국 바이올라대 전문대학원에서 기독교변증학 석사(M.A.) 학위를 취득 당시 공부한 이론을 바탕으로 국내 교회에 '기독교 변증'을 소개하고 있다.

기독교변증에 대해 박 목사는 "기독교 신앙의 합리성을 설득력있게 설명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박 목사가 또 심혈을 기울이는 부분은 다음세대의 성장이다. 다음세대란 청년과 청소년, 어린이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고령화하는 이 시대 교회의 위기, 출산율 저하로 인한 국가·사회적 위기를 극복해보자는 뜻에서다.

실제 박 목사 부임 후 청년 전담 사역자를 두고 청년들을 직접 찾아가는 '심방' 사역이 결실을 얻어 청년 교인이 증가 추세에 있다.

박 목사는 "일제 강점기 국가 위기에서 기도한 서문교회는 앞으로 돌봄이 절실한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힘과 용기를 북돋아 주는 소명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정규 기자 siqjaka@d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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