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 한종수 기자]90이 훨씬 넘은 고령에도 20여 년 가까운 세월을 서예 지도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 인봉(仁峰) 권오성(94·사진·음성군 소이면 갑산2리) 선생.

국가유공자이기도 한 권 서예가는 한 주도 거르지 않고 음성군 소이면행정복지센터를 찾아 지역 주민에게 서예를 가르치고 있다.

이렇게 한 주, 한 주 수업한 것이 어느덧 17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사정상 또래들보다 4년 여 늦게 중학교에 입학한 권 서예가는 중학교 입학 전 한문 선생님으로부터 처음으로 서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당시 한문 선생님 밑에는 7명의 제자가 있었지만 권 서예가만 따로 수업을 받고 다른 제자들은 권 서예가에게 배우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인봉(仁峰)이란 아호도 "나중에 자라면 좋은 일을 하는데 앞장서라"는 뜻으로 한문 선생님이 지어 주셨다.

중학교 3학년이던 1950년 6.25 전쟁이 반발하자 가족과 함께 피난을 떠났던 권 서예가는 군인을 모병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미 2사단에 입대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오른쪽 팔하고 눈에 총상을 입어 미 육군병원으로 후송됐다.

치료 후 한국군 2사단 G3(작전처)에서 복무한 권 서예가는 군 작전에 큰 공을 세운 공로로 화랑무공훈장을 두 번씩이나 받았다.

이후 휴전이 본격 논의되면서 권 서예가 근무했던 작전처가 각종 서류 작성 업무 등을 맡게 됐고 근무자들은 연일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한 상관이 권 서예가에게 수액을 맞을 것을 권유해 병원을 찾았지만 당시 포도당 주사 부작용으로 병원에 재입원하게 된다.

이후에도 병세가 호전되지 않자 요양을 하기 위해 전역을 했다.

전역해인 1953년 고향 소이국민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한 권 서예가는 1995년 퇴직하기 까지 42년 간 교편을 잡았다.

권 서예가는 매주 목요일이면 어김없이 소이면 주민자치센터를 찾아 서예 교실 학생들에게 서예를 가르치고 있다.

서예부 학생들은 남녀 20여명으로, 학구열만큼은 그 어느 프로그램 보다 뜨겁다.

코로나19로 잠시 주춤했던 서예교실은 노선생의 열정에 보답하듯 모처럼 활기를 띄고 있다.

권 서예가의 서예는 칼에 비유할 수 있을 정도로 상당한 기울기와 날카로움을 보여주며 필획의 섬세한 단아함이 특징이다.

권 서예가는 "나이가 있다 보니 예전처럼 붓을 잡기가 어렵지만 아직은 충분히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다"며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해서 강의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호국보훈의 의미를 국가와 국민 모두가 제대로 알아야 한다"며 "국가와 민족을 위한 희생은 '존경의 대상'이지 '사회적 배려 대상자'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음성 한종수 기자 h3325@d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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