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웅전 철조여래좌상 봉안...고대부터 한반도 철 주산지 입증
가장 오래된 예술·조형적 우수 철불로 평가, 철조공예술과 불교 문화 연구 자료
[동양일보 윤규상 기자]충주 엄정면에 명성황후와 인연이 있는 작은 암자(庵子)가 자리하고 있다.
소태면사무소 방향으로 지방도를 따라 올라가다가 왼편 이정표를 보고 작은 길로 접어들면 나지막한 빌미산 자락에 둘러싸인 백운암(白雲菴. 충북 엄정면 내창로 617-80. ☎043-857-3414)이 들어서 있다.
법주사 말사인 백운암은 1886년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충주 3대 철불 가운데 하나인 보물 제1527호 철조여래좌상(鐵造如來坐像)이 모셔져 있다.
백운암 설화는 명성황후로부터 시작된다.
1882년(고종 19년)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명성황후는 한양에서 충주로 피난을 오게 됐다.
이때 파평 윤씨 성을 가진 무속인이 나타나 명성황후가 환궁할 날짜를 예언하고 맞추자 그를 신기하게 여겨 환궁 후 그녀를 한양을 불러 진령군(眞靈君) 벼슬을 내리고 가까이했다.
조선 시대에 무속인 여성을 군(君)으로 봉해진 것은 최초이자 유일한 사례다.
갑오경장이 발발해 진령군 위세가 꺾인 뒤 그녀는 흰옷을 입은 철불이 나타나 자신이 너무 고통스러운 상태라며 현재 절이 들어선 자리에 자신을 안치해 달라는 꿈을 여러 사람에게 알려 백운암을 세웠다고 한다.
당시 이곳은 항상 하얀 구름이 걸쳐 있어 절을 세우면 구름 속에서 계시를 받을 수 있어 당시 인근에 70여개 절이 세워졌다는 말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백운암 대웅전 법당은 건축물과 비석의 기초가 되는 기단이 다른 법당에 비해 매우 낮게 들어서 독특한 형태로 자리를 잡고 있다.
스님들이 부엌과 사무를 보는 종무소가 좌우로 함께 들어선 법당에서 예불과 거주 등 일상생활을 함께한 인법당(因法堂) 형태를 갖추고 있다.
1977년 법당과 요사를 불리한 대웅전에는 통일신라 시대 말에서 고려 시대 초기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는 철조여래좌상이 주존불로 봉안돼 있다.
2007년 대한민국 보물 제1527호로 지정된 백운암 철조여래좌상은 석가모니불로, 인근 보물 제98호 대원사 철불좌상과 보물 제512호 단호사 철불좌상과 함께 충주 3대 철불로 유명하다.
백운암 철조여래좌상은 높이 87cm 크기로 소라껍데기처럼 틀어 말아 올린 머리카락이 표현돼 있고, 몸보다 얼굴이 작은 편이다.
또렷한 이목구비에 근엄한 표정이 잘 나타나 있고, 두 다리를 서로 교차해 책상다리하고 앉는 결가부좌(結跏趺坐) 자세를 취하고 있다.
좌선하는 모습인 철조여래좌상은 오른손은 오른쪽 무릎 위에 얹고 손으로 땅을 가리키며 부처가 악마를 항복시키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목 부분은 지은 악업(惡業)에 의해 왕래(往來)할 수 있는 지옥도(地獄道)와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등 삼도((三道)가 뚜렷하게 보여 영감이 느껴진다.
신체균형이 잘 잡혀있고, 어깨부터 아래로 흘러내리는 옷 주름이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충주지역 철불 중 가장 오래된 상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처리 과정에서 여러 조각을 나눠 철로 주조해 이어 붙인 흔적을 발견했다.
철조여래좌상은 2006년 황금색으로 칠한 불상을 전면 보수해 개금(改金)과 녹을 벗겨내 신라 시대 당시 모습을 되찾았다.
이런 이유로 충주지역 철조공예술과 불교 문화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백운암에 봉안된 철조여래좌상은 충주가 고대부터 한반도 내 순도 높은 철 주산지임을 잘 나타내고 있고, 가장 오래된 예술·조형적으로도 우수한 철불로 평가되고 있다.
백운암은 철조여래좌상을 통해 통일신라 시대 불상 양식의 특징을 잘 살펴볼 수 있고, 다른 철불과 마찬가지로 근현대사의 사료적 가치를 간직한 사찰로 평가받고 있다.
성진 주지 스님은 “백운암은 부처님의 가르침과 행동은 물론 말씀과 생각으로 중생들이 소박한 삶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사찰”이라며 “이곳을 찾는 불자와 관광객 모두가 심신을 평안히 다스리는 도량으로 기억되길 축원하겠다”라고 말했다.
충주 윤규상 기자 yks0625@dy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