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호 병무청 자체평가위원
[동양일보]미국 워싱턴 한국전 참전 용사 기념비의 한쪽 벽면에는 ‘Freedom is not free’(평화는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오늘따라 이 짤막한 문구가 더욱 강렬한 메시지로 다가오는 이유는 뭘까.
그건 아마도 지난해부터 계속되어 온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전쟁 그리고 올해 10월 발발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전쟁을 통해 그 피해와 참상을 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무고한 민간인이 무차별적으로 살상되고 인질로 끌려가 잔혹하게 고초를 겪는 등 전쟁의 참상은 실로 충격과 공포 그 자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평화로운 일상을 보냈던 마을이 한순간에 전쟁으로 폐허가 되는 것을 보니,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차마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한국전쟁을 경험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는 말해 무엇할까!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상황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엄중하다.
미국, 중국, 일본 등 주변 국가들의 패권 경쟁은 깊어졌고 국제사회의 안보 불안정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을 고도화하며 호시탐탐 안보의 빈틈을 위협하고 있다.
이와 같은 안보 위기 상황에서 튼튼한 국방력은 의심의 여지없이 중요하다.
필자에게 국방력의 키우는데 필요한 중요한 핵심 요소 하나를 묻는다면, 단언컨대 나라를 지키려는 숭고한 의지와 실천이며, 그 대표적인 예는 바로 병역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하는 이 땅의 젊은이들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 한편에는 아직도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병역면탈을 시도하고 있다.
올해 초 발생한 ‘허위 뇌전증 병역면탈 사건’에서 브로커와 공모하여 뇌전증 환자인 것처럼 속여 병역을 회피하려 한 이들 130여 명이 적발된 사례가 있다.
여기에는 유명 프로스포츠 선수부터 래퍼, 배우 등이 가담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국민에게 큰 충격을 줬다.
잊을 만하면 발생하는 체육선수, 사회지도층 자녀들의 병역 회피와 불성실한 복무행태들은 성실하게 병역을 이행하는 많은 청년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 주고 이로 인해 병역이행의 공정성이 크게 훼손되고 있다.
이에 병무청은 공정한 병역문화 확산을 위해 2017년부터 체육선수, 연예인, 공직자·고소득자와 그 자녀의 병적을 따로 분류하여 관리하면서 이들의 병역이행 과정이 공정한지 등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해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를 통해 그간 입영일자 연기제도를 악용하지 못하도록 관련 규정을 정비하였고, 고의로 체중을 늘리는 등으로 병역을 회피하려 한 사람들을 적발해 수사기관에 고발하는 등 병역면탈 행위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 왔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병역의 공정성에 대한 국민의 인식은 꾸준히 개선되어 왔고, 특히 연예인 등의 입영 풍속도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유명인들의 모범적 복무는 병역을 앞둔 젊은이들에게 귀감이 되었고, 국방의 의무에 대한 두려움 없이 그 발걸음을 군으로 향하게 하는 마중물이 되고 있다.
업무평가 위원인 필자가 병무 정책을 되짚어 볼 때 그동안 병무청에서는 불합리한 제도를 개선하고 공정병역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그러나 국민이 공감하고 신뢰하는 공정한 병역이행 문화 정착을 위해서는 여기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첨단 무기체계를 갖춰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강한 군사력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나라를 지키겠다는 국민의 의지가 없으면 그 공든 탑은 결국 모래 위에 쌓은 성과 같을 것이다.
모든 국민이 솔선수범해 병역을 성실히 이행하고 병역 앞에서는 ‘누구나 예외 없이 공평하다’는 메시지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때 비로소 진정한 평화가 깃든다고 할 수 있겠다.
튼튼한 안보 위에 평범한 일상이 계속되는 번영된 대한민국을 기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