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선희 청주시문화해설사

송선희 청주시문화해설사

[동양일보]교수님이 떠나신지, 그새 49재가 되었습니다. 천지가 봄꽃 소식인데, 교수님은 무어가 그리 급하셔서 올 8월의 정년도 다 채우지 못하신 채 떠나셨습니까?

한 잎 두 잎 시들어 떨어지는 꽃잎처럼 떠나셨다면 마음의 준비라도 했을 텐데 동백꽃 떨어지듯 갑자기 한 송이 뚝 떨어져 놀란 가슴은 인생의 허망함에 빠져들게 합니다.

교수님께서는 충북대를 졸업하시고, 충남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신 후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근무하시다가, 충북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오셨지요. 이후 수많은 항일 독립운동 관련 논문 및 저서를 남기셨고, 독립운동가 발굴과 그들에 대한 올바른 평가와 정당한 예우를 위해 힘쓰셨습니다. 게다가 그들의 업적을 계승하기 위해 학술적 정비와 대중화, 일반화 작업에도 앞장서셨고, 독립운동의 올바른 홍보를 위해 문화해설사 역할이 크다는 것을 아시고, 인근 지방자치단체의 문화관광해설사 보수교육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셨습니다. 이렇듯 교수님은 떠나셨지만 당신께서 남겨놓으신 업적은 독립운동사 연구에 큰 산으로 남으리라 봅니다.

교수님, 제가 처음으로 교수님을 뵈었던 것이 해설사 교육이었는데 기억하시나요? 교수님의 깊이 있는 지식과 풍부한 경험, 재치있는 강의는 해설사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하였습니다. 국문학을 전공한 저는 전문 지식의 해설이 큰 감동이라는 것을 깨닫고 역사 전공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늦은 나이임에도 용기를 내 사학을 다시 공부하게 되었고, 대학원에서 교수님을 지도교수님으로 모실 수 있어서 정말 행운이었습니다.

교육자로서의 교수님은 매우 엄격하시고 철저한 분이셨습니다. 당신이 학업에 보이는 열정과 태도에 학생들은 존경이라는 이름으로 자발적으로 따랐고, 저 또한 그러했습니다. 학업량은 언제나 많았으며, 학생들이 발표하는 글들은 카피라이터 분석을 통해 일정 수치 미만으로만 발표할 수 있어서 큰 부담이었지만 제가 졸업논문을 쓸 때 그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렇듯 당시 제게는 어렵게만 느껴졌던 교수님이었지만 대학원을 졸업 후 교수님께서 하셨던 충북의 독립운동사적지 조사에 교수님 요청으로 저도 참여하면서 교수님의 따뜻하고 인간적인 부분을 많이 볼 수가 있었습니다.

충북 지역의 독립운동사적지 조사는 2021년에 충북의 독립운동 사적지를 찾아내어 사진 찍고 자료를 만드는 일이었지요. 봄에는 자료를 조사하고, 여름에는 날씨가 좋은 날을 택해 충북 권역을 돌며 드론과 카메라를 이용해 사진을 찍으며 유적지 상황을 기록하고, 가을에는 관련 기록들을 정리하는 일이었습니다. 4명이 한 팀으로 조사를 다녔는데 가만히 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30도가 넘는 뜨거운 날씨에 교수님께서 직접 사진을 다 찍으시는 것을 보고 교수님의 열정에 또 한 번 놀랐습니다. 게다가 일에 있어서 얼마나 철저하시고 꼼꼼하신지 조그마한 것이라도 미흡하다고 느끼시면 아무리 먼 거리라도 마다하지 않고 2~3차례 더 다녀와야 했던 것을 보고 명성이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그 힘들었던 조사였지만 차로 이동할 때 교수님께서 말씀해 주셨던 사적지와 관련된 이야기나 교수님의 경험담-교수님의 짧았던 청산고등학교의 교직 생활, 중국·러시아·북한 방문기 등-을 들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었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하니 그때 녹음이라도 해두지 않은 것이 참 아쉽습니다.

발라드를 좋아하시고 그 뜨거운 여름날에도 꼭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드셨던 교수님.

그때 뵈었던 교수님은 함께 다녔던 제자들보다도 체력이 좋으셔서 정말 무병장수하실 거라 생각이 들었는데 올해 2월에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나신 것이 도저히 믿겨지지가 않습니다. 담도암과 투병한 지 일 년여 만인데 그 기간에도 교수님은 여전히 강의도 하셨고, 그사이 몇 차례 제가 찾아뵐 때도 밝고 당당하셔서 당신께서 병마도 잘 이겨내시리라 믿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떠나시다니 너무 허망합니다.

요즘처럼 이렇게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해설할 때면 교수님이 더욱 생각이 납니다. 당신께서 독립운동 연구에 쏟으셨던 열정과 그러면서도 주위 사람들에게 보여주셨던 인심 좋은 미소를 쌀쌀한 봄바람이 더 일깨워 주는 것 같습니다.

교수님, 그곳에서는 좀 편안히 쉬십시오, 교수님이 좋아하셨던 먼저 가신 지인분들 만나셔서 그 좋아하시던 약주도 드시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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