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마르퀴즈 후즈후 (세계3대 인명사전) 등제
전국최초로 레미콘차량 활용 농업용수 공급…가뭄에 단비
[동양일보 김진식 기자]증평·괴산지역 최초로 레미콘 공장을 설립해 35년째 한자리에서 정도경영을 펼치고 있는 경영인이 있다.
레미콘업계의 산증인이며 2018년 마르퀴즈 후즈후 (세계3대 인명사전)에 등재되기도 한 정성화<사진> 풍남레미콘 회장이다.
서울 출신으로 소탈한 성격의 정 회장을 말할 때면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그는 2001년 전국이 가뭄으로 논과 밭이 거북이 등 같이 갈라지는 현실에 안타까워 하며 전국 최초로 지역 농민을 위해 레미콘 차량을 이용해 농업 용수를 보급했다. "저의 가장 큰 자산은 직원이고 기업의 가치는 곧 존속 이다“라고 말하는 정 회장은 1990년 괴산군 증평읍 도안면(현 증평군 도안면)에 둥지를 틀고 30여 대의 레미콘차량과 50여명의 직원 등 적지 않은 규모로 풍남레미콘을 설립했다.
서울 휘문고를 거쳐 고려대 법대를 전공한 전형적인 법학도가 레미콘맨이 된 배경에는 어려웠던 가정 환경도 한몫 했다. 이런 환경 탓에 사법고시를 접고 지금의 학사장교 후보생으로 임관해 중위로 제대하고 8년간 외환은행에서 근무했다. 이후 1979년 진흥기업(2008년 효성그룹 인수)에 입사해 중동 붐이 일던 1980년 사우디아라비아에 파견돼 건설에 첫 발을 들였다. 고국에 돌아온 그는 중동 현장에서의 건설 경험과 지식을 살려 레미콘 공장이 전무하던 증평으로 내려와 레미콘맨으로의 삶을 시작했다.
“그 시절만 해도 건설경기가 호황을 누리고 믹스차량도 귀해 눈코뜰새 없이 바빴다”며 “돈도 많이 벌고 레미콘의 전성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정 회장은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면서 “덤핑 수주와 치열한 경쟁으로 레미콘 회사들이 경영난을 이겨내지 못하고 문을 닫는 등 하루아침에 주인이 바뀌는 일들을 많이 봤다. 풍남도 이러한 변화에 비켜가지 못하고 힘들었다”고 말하는 그는 지금이야 웃으며 말하지만 납품 대금으로 받은 빛바랜 30여 억원의 차용증과 부도난 회사의 어음 쪼가리를 꺼내 보이며 “회사를 지키고 직원들 급여를 주기 위해 자산을 매각하고 아내와 살던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 지급했다”고 회고했다.
정 회장은 “과다한 레미콘 제조업체, 불안정한 원자재 수급, 허술한 품질관리, 정확하지 못한 산업 통계 등”이 레미콘 업체를 위협하는 대표적 현안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건설 경기가 꺾이면 레미콘 시장은 과잉경쟁 체제로 들어서고 적자경영으로 인한 부실화가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며 “레미콘을 생산하는 기업 중 70% 이상인 중소기업들은 건설 경기가 꺾이면 버틸 여력이 없어 도산한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건설업계와의 상생·협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정 회장은 직원들과의 소통도 중요시한다. 건설경기 침체에 따른 경영환경이 악화되는 어려움 속에서도 주기적으로 직원들과의 소통의 시간을 갖고 있다.
또 자신의 어려웠던 청소년기를 거울삼아 매년 증평군민장학회에 장학금을 기탁하며 지역 인재양성에도 앞장서고 있다.
83세의 나이에도 건강한 삶을 살고 있는 정 회장은 “제2의 고향인 증평에 내려와 레미콘 공장을 설립한지가 벌써 35년이 됐다”며 “창립 맴버인 홍석주 사장과 직원들의 열정과 노고로 풍남레미콘이 건재할 수 있었다”고 공을 돌렸다.
그러면서 “지역사회 발전과 풍남 가족들의 더 나은 미래 환경조성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증평 김진식 기자wlstlr1220@dy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