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의 정석을 지키고 가독성 높은 당선작

김봉군
박희팔
안수길

[동양일보]응모작 147 편 가운데, 예심을 통과한 ‘기묘한 부인’ ‘호모루덴스’ ‘늦은 오후 어느 날’ ‘그늘집’ ‘감천댁의 그믐’ ‘황태 게송’ ‘산마늘’ ‘하양’ ‘떠도는 돌’ ‘하늘 끝방’ 10편을 본심 대상에 올리고. 10편에 대한 심사위원 3명의 의견에 따라 4편으로 압축 후, 소재의 건전성 및 주제와의 적합성, 구성과 문장의 숙련도 등을 중심으로 논의 끝에 ‘떠도는 돌’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최종심 대상에 오른 4편의 작가들 모두가 만만찮은 기량을 보여준 작품들이었다. 당선작 결정에 긴 논의가 필요했던 것은, 심사위원들의 시각에 다소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늘 끝방’은 재 응모작이다. 선정적으로 흐를 듯한 소재를 건전하고 희망적인 분위기로 구성해 나간 점이 좋았으나, 이전 응모 때와 같이 결말처리가 상식적이고 안이하다는 지적과 함께, 재 응모작이라면 기시감을 넘어 시선을 끌 만한 진전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따랐다.

산마늘’은 퇴직 후 귀농한 부부와 혼혈아를 둔 가족이 자기 정체성을 확인해가는 과정을, 낯선 풍토에 적응하며 착근에 성공한 산마늘과 대비시킨 이색적인 발상에, 문장력도 우수한 작품이다. 다만 전개되는 상황들이 주제 부각에 절실한 것인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작품 전체의 흐름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생각해볼 문제다. 서술 기법상 보여주기(showing)와 말해주기(telling) 중, 후자에 치중한 본 작품에서는 생략과 요약에 좀 더 신경을 썼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소설의 진전 속도를 높이고 독자에게 상상의 여백을 제공하는 데는 작가의 과잉 친절이 오히려 방해될 수 있음을 유념해야겠다.

‘하양’ 도입부에서는, 돌연변이로 태어난 몸 빛깔 때문에 맹수의 표적이 되어 죽어가는 ‘알비노사슴’과 무리와의 교감(交感)장면은 비장(悲壯)할 만큼 탁월한 묘사력과 상징적인 기법을 원숙하게 구사했다. 그러나 속설을 믿는 인간 사냥꾼의 납치와 살해 대상이 된 나(話者=‘알비노인간’)의 가족(아버지, 남동생)을 이기적인 인간으로 설정하고 화자의 자살 시도 장면을 삽입한 것은 소설의 주제를 약화시켰다. 알비노로 태어난 사슴과 인간이 겪는 남다른 공포와 차별로 인한 고통을 어떻게 극복하고 살아남느냐, 그건 인고(忍苦)와 이타적인 사랑을 공유, 교감하는 것이 아닐까?. 사슴과 인간, 두 무리 사이의 서로 다른 교감이 초반의 비장감이 비정(非情)으로 바뀌면서 주제가 모호해졌다. 아쉬운 작품이지만, 작가의 섬세한 문장력이 기대를 갖게한다.

‘떠도는 돌’은 문단별로 ‘보여주기(showing)’ 혹은 ‘말해주기’ 기법을 적절히 활용, 독자의 뇌리에 상황이 일목요연하게 그려질 만큼 간결하고 세밀한 묘사로, 단편소설의 정석을 밟으면서도 가독성을 높였다. 문장이나 구성에도 별다른 하자가 없을 만큼 틀이 잡혔을 뿐 아니라, 작가가 선의(善意)를 과장하거나 자의식에 빠지지 않고 시종일관 절제력을 발휘, 침착하고 냉정을 유지한 관계로 독자도 편안한 가운데 잔잔한 감동을 느끼게 한다, ‘고아 수출국’이란 불명예를 안게 된 우리 현실을 비판하거나 자괴하지 않았는데도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하는 작품이다. 당선작으로 올리며, 응모자들의 노고에 감사를 드리고 문운을 빈다.

심사위원 김봉군 문학평론가, 박희팔 소설가, 안수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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