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돼오던 공간이 미술관으로 재탄생
산그림자 내려오고 대청호에 비친 운치 그대로가 작품
재개관 첫 전시로 ‘김환기와 편지’展
청남대 문화예술공간으로 급부상 ‘한몫’
[동양일보 도복희 기자]청남대에 가면 호수영미술관이 있다. 산그림자가 내려오고 대청호에 비친 미술관의 운치가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다. 이곳은 청남대가 생긴 1983년부터 역사를 같이해 온 건물로 BOQ라 불리는 미혼장교와 부사관 전용 숙소로 사용되던 곳이다.
2003년 청남대가 개장된 후 다양한 활용 방안을 모색했으나 오랫동안 방치돼다 2020년 업사이클링을 통해 호수갤러리로 재탄생했다.
빼어난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한 문화예술공간은 관람객의 발길을 잡으며 쉼터가 되기에 충분했다.
이곳에서는 지역 예술가와 도내 주요 미술품 등 다양한 기획 전시로 눈길을 끌었다. 특히 지난해 선보인 모네&르누아르 전시회는 지역에서 드물게 누릴 수 있는 문화적 시간을 선물했다.
올들어 전문적이고 체계적 미술관 운영을 위해 내부를 새롭게 정비하고 ‘호수에 비치다’라는 의미를 담아 ‘호수영미술관’으로 재개관, 그 첫 전시로 ‘김환기와 편지’展을 선보이고 있다.
시몬느 박은관 회장의 컬렉션으로 4월 22일~6월 23일 전시되는 ‘김환기와 편지’展은 호수영미술관 1, 2층을 전부 특별전시장으로 구성해 △창가의 달과 항아리 △환기의 정원과 식물 △매화·새와달 △번짐 △거대한 작은 점 등 총 5부로 보여주고 있다.
김환기 작가는 아방가르드와 추상미술의 선봉에 선 20세기 대한민국 대표적 화가이자 산·강·달 등 지극히 한국적인 자연환경에서 소재를 얻어 조형화한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대표하는 거장이자 서구 모더니즘을 한국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호수영’이라는 의미가 담고 있는 자연과 호수, 청남대를 품고 있는 대청호와 산자락은 어쩌면 김환기가 사랑하고 아꼈던 이런 한국적인 것들과 의미가 맞닿아 있다.
김종기 청남대관리소장은 “호수영미술관 재개관 첫 전시로 김환기의 작품을 선보임으로써 한국적인 정취를 직접 느낄 수 있도록 특별히 기획하게 됐다”고 전시 취지를 밝혔다.
이번 전시는 ‘정원 Ⅱ’, ‘새와 달’을 비롯한 여러 점묘화 등 김환기 작품 11점과 달항아리 2점이 그의 일기와 편지, 수필과 어우러져 깊이있게 작품세계를 전달하고 있다.
이번 전시품은 핸드백 제조기업 시몬느 박은관 회장의 소장품으로 모두 진품이다. 평소 청남대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박 회장의 전시품 후원으로 ‘김환기와 편지’ 전시회를 열게 됐다.
이번 전시에서 눈에 띄는 작품은 1957년 완성된 ‘정원 Ⅱ’다. 둥근 달이 떠 있는 풍경을 배경으로 매화 꽃가지와 항아리, 새, 여인들이 그려져 있는 푸른 색조가 신비롭게 다가온다. 이 작품은 김환기가 파리에서 활동하던 시절 그가 아꼈던 한국적인 요소들이 모두 들어 있는 주요 작품으로 평가된다. 전시된 작품 앞에는 작가가 그 시절 상상했을 정원을 현실적으로 구현해 놓았다. 작품을 관람하며 자신만의 정원을 상상하는 것도 전시의 재미를 더할 것으로 보인다.
‘달항아리’는 김환기 작품의 주요 소재로 이용된다. 전시장의 달항아리가 빛의 흐름에 따라 창밖의 호수와 산의 모습을 시시각각으로 품고 있는 모습은 경탄할 만하다.
전시장 곳곳에 작품과 함께 어우러져 있는 그의 시와 편지, 수필은 민족정서가 담긴 자연관과 동양철학, 화가로서 모색해 온 서양미학과 방법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성찰의 시간 속에 연마된 조형의 세계에서 추상표현의 절정과 마주할 때 당신은 전율을 느끼게 될 것이다.
방치돼오던 공간에 대가의 예술을 담아낸 호수영미술관의 변화는 청남대를 문화예술공간으로 급부상시키는 데 한몫했다.
청남대 또 다른 전시관에는 판화의 대가 ‘김준권 초대전’, 글과 그림으로 보는 문인화의 세계 ‘정숙모 초대전’이 진행되고 있다. 6일까지 열리는 영춘제를 즐기면서 예술의 세계에 흠뻑 빠질 수 있는 그곳에 가보기를 권한다.
도복희 기자 phusys2008@dy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