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환 수필가
[동양일보]신규교사로 초임지에서 6학년을 담임하였다. 키순으로 학생좌석배치를 하는 날이다. 한 학생이 옆자리에 같이 앉게 된 학생 옷에서 냄새가 나고 친구들을 자주 괴롭힌다고 하며 울상이다. 어제 결석했던 그 학생에게 다가가 “내일은 옷을 깨끗이 빨아 입고 오세요”라고 했으나 다음 날도 냄새나는 그 옷이다. 어쩌다 쉬는 시간에 교실을 잠시 비우면 어김없이 반 친구들을 괴롭히며 소란을 피운다.
하루는 그 학생을 교실에 남게 하고 나와 서로 마주 보며 무릎을 꿇고 함께 벌을 섰다. 지나가는 학생도 선생님도 의아해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1시간이 지날 무렵 눈물을 흘린다. 후회의 눈물이다. 다시는 옆의 친구를 괴롭히지 않겠다고 한다. 나는 눈을 지그시 감고 못 들은 척했다. 하지만 그 학생은 흐느끼며 소리 내어 엉엉 운다. 굵은 눈물이 교실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며 얼룩이진다. 이때 나의 마음도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의자에 걸려있는 수건으로 학생의 눈물을 닦아주고 살며시 안아주었다. 침묵의 시간이 흐른다. 잠시 후, 그 학생은 용서를 받은 듯, 환한 얼굴로 엷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본다. 초년교사로 처음 느껴보는 보람의 순간이다.
언제였던가. 그 학생의 가정을 찾으니 기막힌 사연이 쏟아진다. 아버지의 잦은 술과 가정 폭력, 그리고 경제적 무능을 이유로 어머니가 어린 아들을 남겨놓고 가출을 했다고 한다. 순간 내 가슴도 철렁 내려앉는다. 안타까운 방문을 마치고 사립문을 나서며 그 학생에게 내일 학교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을 하고나니 봄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멀리서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물이 아닌가 싶다.
이제껏 나는 그 학생을 위해 무엇을 했나. 왜 그토록 미워했나. 초년교사라 경험이 부족해서일까. 아니면 사랑의 정이 부족해서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오로지 지식만 전달하는 교사였지 그 학생의 아픈 마음을 헤아려주는 사랑의 인성교육은 소홀했나보다. 생각 할 수 록 스승의 길은 참으로 어렵다는 생각이 가슴을 파고든다.
어느 날, 학생의 웃옷과 바지를 벗겨 운동장 모서리에 있는 펌프식 샘에서 빨래 비누로 빨으니 시커먼 땟물이 나오고 또 나온다. 양지바른 담장에 옷을 널고 마르는 동안 학생과 마주 앉아 1:1 멘토링 수업을 했다. 이해가 빨라 수업목표도 쉽게 도달한다. 이뿐인가. 동네 이발소에 가서 머리도 깎아주었다.
몇 달이 지나 성적이 많이 올라 진보상 進步賞을 주었다. 성적이 많이 오른 학생에게 주어지는 특별한 상이다. 그 후, 옷차림도, 머리도 단정해지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모범학생으로 변하였다. 반 친구들도 가까이서 어울리고 좋아한다. 친구 속의 친구가 되어 함께 즐거워하는 모습을 바라보니 내 마음도 흐뭇해진다.
그 학생은 전국소년체전에서 씨름부 선수로 금메달을 땄다. 이때 갑자기 낯모르는 아주머니가 다가와 그 학생을 안아주며 말없이 눈물을 흘린다. 알고 보니 학생의 어머니였다. 재회의 기쁨과 금메달의 감격에 북받쳐 운다.
정년 후, 사회 곳곳에서 봉사를 하고 있을 때, 낯모르는 번호가 울린다. 받아보니 6학년 때의 그 학생이다. 총 동문체육대회가 열리는 날, 나를 초대한다고 한다. 지금 그 학생은 총동문회장이고 지방자치단체의회 의장이다. 환갑을 넘었다고 하며 머리가 희끗희끗하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상전벽해 桑田碧海가 아니던가.
체육대회 개회식에서 나를 6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으로 소개하며 진보상과 금메달 이야기를 쏟아낸다. 그러면서 수십 년 동안 보관했던 빛바랜 금메달을 나의 목에 걸어준다. 감격스런 순간이다. 운집했던 동문들의 박수가 쏟아진다. 나는 개회식장에서 그 학생 의장님을 힘껏 안아주었다. 평생 세 번째의 눈물겨운 포옹이다. 이렇듯 내 스승의 길은 늘 부족했나보다. 혹시 이 길을 또다시 걷는다면, 후회 없는 길이 꼭 열릴 것만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