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만수 시인 소설가

한만수 시인소설가

[동양일보]요즈음은 봄인가 싶으면 여름이고, 가을인가 싶으면 겨울이다.

거리에 나서면 가로등이 한여름처럼 녹음이 짙다. 한여름과 다른 점은 뜨거운 햇볕을 피해 가로수 그늘 밑에 서 있는 행인들이 없을 뿐이다. 청년들은 뛰어가는 세월을 붙잡기라도 하는 것처럼 반소매셔츠에 반바지 차림으로 활보를 한다. 손에는 스마트폰을 들거나, 바지 뒷주머니에는 여지없이 스마트폰이 꽂혀 있다.

청년들만 전장에 나가는 군인의 필수품처럼 집 밖으로 나가면 스마트폰을 챙기는 것이 아니다. 지하철을 타면 열에 아홉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예전에는 친구들끼리 지하철을 타면 웃고 떠들며 대화를 하는 풍경이었다. 요즈음은 착석하자마자 약속이나 한 것처럼 스마트폰을 꺼내 든다.

식당에서 밥을 기다릴 때도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부장부터 갓 입사한 신입사원까지 각각 스마트폰에 빠진다. 집 안에 있는 전화기도 안식년에 들어간 지 오래다. 텔레비전 앞에 온 가족이 앉아서 뉴스나 드라마를 보거나, 스포츠 경기에 응원하는 모습은 전설 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다. 각자 자기 방에서 스마트폰을 유튜브를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뉴스를 검색한다.

가끔 일 년에 한 차례도 이용하지 않는 유선전화요금을 왜 내지? 하는 생각이 든다. 내 가정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은 일 년에 단 한 차례도 사용하지 않는 전화 요금을 지불하고 있다. 한국통신은 가만히 앉아서 몇천 억원의 불로소득을 얻고 있는 점이다. 그런데도 한국통신에서 사회복지 사업을 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없다.

집필실에 있는 유선전화도 핸드폰으로 연동을 시켜 놔서 사용하지 않는다. 전화 요금을 지불하고 있는 것은 명함이나, 홈페이지에 연락처를 핸드폰 번호만 남겨두는 것이 왠지 야박해 보이고, 보는 사람들에게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체면유지비를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문득 생각해 본다. 어느 날 갑자기 핸드폰을 사용할 수 없게 됐다. 그럼 예전처럼 지하철에서 신문을 읽거나, 가족끼리 모여 앉아 텔레비전을 보게 될까? 대답은 아니오다. 그러기에 우리는 대화하는 법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이 슬픔으로 차오른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