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식 문학박사. 국원문화재연구원장

장준식 국원문화재연구원장·문학박사
장준식 국원문화재연구원장·문학박사

[동양일보]제천시가 고려인의 이주정책을 추진하고 있음을 신문과 전언을 통해 접하면서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시작된 이 일이 후대의 역사에 반드시 기록될 만한 주요사업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고려인들의 이주정책이 인구 소멸 위기의 지방도시에서 인구증가와 생산력의 증가라는 기대효과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그들이 누구며, 어떻게 이역만리에서 고려인으로서 모질고 질곡된 삶을 살와 오늘까지 지탱해 왔는가? 라는 역사의식이 없다면 추동할 수 없는 정책이라고 생각된다.

일반 공무원들이 일상에서 해온 일이 아니라 해외동포의 이주라는 엄청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데는 국가 간 외교 문제부터 언어소통과 문화적 이질성 등을 극복해야 할 많은 역경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동질성 회복이라는 신념에서 시작된 정책적이고 행정적인 업무추진으로 생각하면 결코 낯선 일일 수는 없을 것이다.

20세기 초 우리 국가가 국가기능을 상실하면서 해외 이주민들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조국을 떠나게 된 그들-특히 고려인들의 삶은 엄청난 박해와 강제이주 등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처절하고도 지난한 고난의 역사로 점철된 희생양들이 아니던가. 여기서 우리 민족의 수난사를 길게 언급할 수는 없겠지만, 단언컨대 그분들은 우리와 같은 핏줄을 나눈 아버지 어머니이자 할아버지 할머니였으며, 최근에 제천시로 이주하는 이 분들의 후손 역시 우리 민족이요 우리 동포이자 우리의 형제자매가 분명하다.

그분들이 겪었던 고난의 여로와 행장은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에 한반도에서의 일부 부유층이나 식자층에서 보여 주었던 민족을 배신한 친일행위와 같은 부끄러움은 있을 수 없는, 이주민족의 서럽고 억울하고 피맺힌 절망의 늪에서 대를 물린 세월이었음을 역사는 증언하고 있지 않는가.

그렇다면 ‘의병의 도시’인 제천에서 이분들의 후손을 포용하는 것은 역사의 맥락에서 볼 때, 가장 타당성 있는 귀결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이른다. 여기에는 이주민들의 주거문제. 교육문제와 더불어 문화의 이질성 해소 등 여러 문제점이 있을 것이나 이 또한 우리가 해결하고 풀어야 할 과제임이 분명하다.

나는 김창규 제천시장과는 일면식도, 한 번의 전화통화도 없는 관계다. 단지 그분이 외교관출신 자치단체장이라는 사실만 알고 있다. 외교관으로서의 삶에서 자연히 민족관과 국가관이 확실하게 정립되었을 터이고, 그 연장선상에서 제천시의 고려인 유치가 입안되고 추진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시단위의 행정기관에서 지금까지 시도되지 않았던 새롭고 낯선 사업의 추진과정에는 사업의 타당성과 기대효과의 불확실 등 여러 가지로 부담이 있었을 것이며, 마땅히 국가가 해야 했을 사업을 지방의 소도시에서 추진하는 데는 여간한 용기와 결의가 없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 시책을 진행하는 김 시장과 제천시 공무원들에게 격려와 함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필자는 한국문화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 그동안 제천지역의 문화유산에 관심을 가지고 오랫동안 연구를 지속해 왔다. 근래에 제천시가 추진하는 해외동포의 이주정책 소식을 듣고 이 일은 훗날, 지방을 넘어 국가적인 성과물로 우리 민족의 영광이 될 것으로 확신하여 이와 같이 훌륭하고 아름다운 정책에 역사연구자로 박수를 보내려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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