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사는 집, 우리는 모두 이야기다
오혜자 초롱이네도서관 관장
[동양일보]마을과 마을도서관의 시작
용암동은 예전에 청주시 동남쪽 낙가산 자락에 있는 용바위골이라 불리던 곳이다. 터를 닦고 동네가 생긴지 30년 정도 되었는데, 당시에는 도시 외곽의 신도시들이 그렇듯이 청주시의 젊은층이 몰려 상업지구와 신생문화가 번성했다. 도시는 거실에 앉아서도 실감할 만큼 빠르게 변화했다. (구)용암동은 아이가 커서 집을 떠나 부모세대가 남은 동네가 되었고 문화주도권은 (신)동남지구로 옮겨갔다. 초롱이네도서관도 마을이 생길 당시 원봉초등학교 골목 안쪽에 자리를 잡았다. 마을 입구의 둥구나무인 양 지역의 부침을 같이 겪으며 자리를 지켜왔다.
1999년에 문을 연 초롱이네도서관의 초기회원들은 생협이나 한살림의 조합원이거나 공동육아어린이집과 대안학교에 다니는 아이들과 부모들이 많았다. 삶을 가꾸는 글쓰기를 지향하는 마을교사와 새로운 어린이독서문화를 만들어나가고자 하는 어린이도서연구회 등 시민들의 자생적 공동체들이 목소리를 내고 활발하게 활동을 펼쳐나가던 시기였다. 각 영역에서의 활동만이 아니라 가족단위 문화기획이 만들어지면서 마을 안에서 더불어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화공간과 컨텐츠와 전문인력 등 아쉬운 부분은 머리를 맞대고 방법을 찾으면서 실험정신으로 밀고 나갔다. 돌아보면 건강하고 젊은 일꾼이었던 우리는 훌륭한 인력풀이었던 샘이다.
마을도서관이 동네기록관을 품다
‘문화도시 청주’는 2020년 코로나와 함께 우리가 만난 특별한 프로젝트였다. 노래를 부르지 못하고 손을 잡지 말아야 하는 상황이 길어지면서, 점차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를 만드는 일이 쉽지 않게 되었다. 다음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그간 마을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열정을 다했던 시간을 기록으로 남기는 활동을 시작했다. 용암동 동네기록관의 시작이었다.
동네기록관 1년차에는 고르고 골라 미래에도 기억되면 좋을 세가지 문화활동을 기록했다. 상당공원에서 가족책축제로 벌인 ‘가을동화잔치’는 20년을 이어왔고, 손길이 좀 더 필요한 마을 복지관과 장애학교 아이들에게 매주 책을 읽어주었던 ‘찾아가는 이야기선생님’은 13년, 동네의 학교와 복지관과 도서관 등 15개 마을기관이 아이가 행복한 마을을 만들자며 매월 모임을 하고 있는 해피아이네트워크는 15년을 이어온 활동이다. 동네를 누비며 사람들과 재밌는 일을 꾸미고 실행으로 옮겼던 일들이 바람결에 사라지기보다, 이야기로 불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마을기록활동가들이 첫걸음을 내딛었다.
2021년에는 도서관 안에 동네기록관 상설전시관을 조성하여 마을기록물을 전시하고 주민들과 공유하기 시작했다. 2022년에는 오래 활동하는 문화소모임이야기, 좌충우돌 다둥이 가족 성장이야기, 마을어르신들의 하루하루를 담은 그림일기 등 사람 사는 이야기를 기록물로 제작하여 가족들과 함께 공감전시회를 열었다. 2023년은 우리마을공동체 해피아이네트워크 일년살이를 담은 마을다큐를 제작하고, 어르신들 마실 다니는 골목과 공원의 나름 명소를 찾아 기록했다. 마을은 땅이고 집이면서 그곳에 사는 사람이다. 마을을 기록하는 중에 서로의 일상을 이해하고 감동하고 좀 더 사랑하게 되었다. 동네기록관이 초롱이네도서관을 이어갈 이유가 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