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응 수필가
[동양일보]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하는 말 중에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이 있다. 이 말은 함부로 방정맞은 말을 하다가 곤란을 겪는 경우나, 우연히 말한 것이 마침내 사실로 되어 어려움을 당할 수 있으니 말을 함부로 내뱉지 말고 조심하라는 말이다.
지난달 지역 내 기관장 열 분과 함께 하는 모임에서는 산불이 화두가 됐다. 그 자리에서 “다른 지역에 비해 우리 지역은 산불이나 화재 한번 없는 청정지역”이라며 자랑을 했더니 소방서장이 손사레를 치며 “말이 씨가 된다”며 “그런 말씀 했다가 우리 지역에 불나면 어쩌냐”고 큰 걱정을 했다. 아차 싶었다.
그 순간 옛날 교직생활 때가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나는 모교인 초등학교에서 평교사, 교감, 교장으로 16년을 재직했다. 그런데 모교에는 체육관 건물과 차도 사이에 높이 2∼3m, 두께가 3∼40㎝, 길이가 50m 정도 되는 옹벽담이 있어 학교가 아닌 폐쇄된 교도소 같은 느낌이 들곤 했다. 그게 늘 마음에 들지 않던 차에 교감 재직 시절 한 행사에 참석했다가 “내가 이 학교 교장이 되면 옹벽담을 반드시 철거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자 좌중의 대부분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담을 헐었다가 도둑이 들면 어떻게 할 거냐”는 걱정까지 나왔다. 나는 ‘담이 있다고 들어올 도둑이 안 들어오겠냐’고 혼자 속으로 곱씹었다.
2년 뒤 나는 정말 모교 교장으로 부임했다. 그리곤 첫 사업으로 ‘옹벽담 철거’에 들어갔다. 증평군에서 1억여원을 지원받아 옹벽담을 철거하고 운동장 높이에 맞춰서 조경석을 쌓고 사이사이에 영산홍, 철쭉 등 꽃나무를 식재했다.
퇴임하고 15년이 지난 지금도 봄이면 꽃들이 만개하는 아름다운 쉼터를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이 좋은 예로 드러나기도 하나 보다.
역시 교감일 때 졸업 기수가 같아 허물없이 지내던 동갑내기 여교사가 있었다. 당시 교감 업무 중에는 교원들의 성과를 상‧중‧하로 나눠 평가해야 하는 ‘교원 성과급’이라는 곤란한 업무가 있었다. 그런데 그 여교사는 본인은 최하 등급을 줘도 괜찮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하곤 했다, 나는 동기 여교사가 교감의 애로사항을 이해하고 위하는 말로 받아들여 그대로 최하위 등급을 주었다. 결과는 의외였다. 여교사가 크게 항의하며 반발한 것. 말은 그렇게 했어도 막상 최하등급을 받으니까 동료 직원들에게 창피한 생각이 들더라는 것이다. 그 여교사 입장에서는 말이 씨가 된 셈이다.
말이 씨가 된다.
쉽게 말한 것이나 무심코 한 말이 실제로 이루어질 수 있으니 말조심하라는 뜻이다.
‘말한 대로 된다’는 것을 유념하며 늘 말을 조심하고 즐겁고 이로운 말만 많이 하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아들 손주들도 남이 들어서 불편한 말은 아예 입에 담지 말고 남이 들어서 행복한 말만 하는 습관을 길러 주었으면 좋겠다.
이제 팔순을 앞둔 노인이 젊은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고 좋은 인상을 주는 그런 말만 하겠다고 다짐을 해본다. 정말로, 정말로, ‘말이 씨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