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희 수필가

이은희 수필가

[동양일보] 몸의 기억은 잊히지 않는다. 몸과 마음이 지쳐 고단해도 그 시간을 알고 눈이 떠진다. 나에게는 과학자가 설계한 시계보다 정확한 몸시계를 지니고 있다. ‘몸이 기억하는 기억은 결코 잊혀지지 않는다.’라는 어느 시인의 말은 나를 두고 하는 말이다. 사십 년 이상을 묘시에 일어나 마당을 서성이고 있다. 마당이 없던 시절은 거실의 식물을 매만지며 어슬렁거렸던 것 같다. 어디 그뿐이랴. 내가 본 경건한 의식은 모두 마당에서 일어났다. 첫새벽에 정화수를 떠 놓고 간절히 비손하던 모습과 틈을 내어 마당에 온갖 기화요초를 정성스레 가꾸시던 친정어머니 숨결이다.

그리움이 깊으면 그리운 것을 눈앞에 옮겨놓는가 보다. 유년 시절의 기와집 마당처럼 매발톱, 작약, 나팔꽃, 제비붓꽃, 코스모스, 비비추, 참나리, 원추리, 해바라기, 분꽃, 봉선화 등 토종 꽃과 나무 100여 종이 테라스(일명, 하늘정원)에서 피고 진다. 아파트에 머물며 몸에서 무언가 빠진 듯했다. 돌아보니 내 몸은 언제나 기와집 마당을 서성이고 있었다. 그렇게 전원생활을 원하던 터에 테라스가 달린 복층 아파트에 머물게 된 것이다. 몸속 세포들이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일어나, 예전 기와집 마당을 복원하듯 정원을 가꾸고 있다.

24층 테라스에 흙과 모래, 자갈을 옮겨와 정원처럼 꾸민다. 나무로 화분을 짜서 뿌리 굵은 나무를 심고, 작은 화분에 보고 싶은 식물을 늘려간다. 직장을 다니며 틈나는 대로 식물을 보살핀다. 품을 떠난 아들딸 대신으로 애지중지한다. 분신 같은 식물 덕분에 멀리 떠나는 여행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 궁여지책으로 식물을 돌봐 줄 수 있는 사람을 구하고야 삼사일 겨우 집을 비운다. 여행을 못 하는 불편함이 초점이 아니다. 나는 자연과 함께할 때 본연의 내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 마당은 나만의 숨통을 트는 소중한 시공간이고, 묘시에 바라보는 하늘정원이 얼마나 느꺼운지 모른다.

마당은 많은 기억을 품게 한다. 아니 내 기억의 마당은 많은 걸 품고 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이야기하며 희아리를 고르고 가축을 키우던 뒷마당과 장독대와 펌프가 자리하고 온갖 꽃과 미루나무 여러 그루가 서 있던 앞마당. 그 기억을 언제 어디서나 출산한다. 유년 시절에는 공기놀이와 사방치기, 고무줄놀이하며 마당에서 해종일 놀았다. 비가 내려 놀이를 할 수 없는 날은 툇마루에 걸터앉아 미루나무 울타리를 뚫어지라고 살핀다. 바지랑대를 들고 개구리들이 튀어나오길 기다리는 거다. 자매들이 광속으로 쏜 휘황한 눈빛에 누구라도 먼저 쓰러지고 말리라. 개구리가 보이면 일필휘지하듯 장대로 휘두른다. 그렇게 연탄불 주위에 옹기종기 앉아 개구리 뒷다리를 구워 먹던 그 맛을 누가 알랴. ‘기억은 날 것 그대로이고, 추억은 발효되어 정확히 기억나질 않는다.’라고 했던가. 마당에서 몸으로 낳은 유년의 기억이 그러하다.

다양하고 풍부한 기억이 많은 사람은 삶이 아름답단다. 내 정신의 뿌리는 마당에서 부모님과 함께한 기억이다. 돌아가신 어머니는 생활 속에 무시로 나타나 삶의 지혜가 되고, 내 몸의 기억은 당신의 모습을 비슷하게 발현하고 있다. 그리움이 깊으면 소원도 이뤄지려나. 나는 매일 마당에서 기른 꽃 한 다발을 품에 안고 어머니를 찾아간다. 그때마다 당신을 찾을 수 없어 눈물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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