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경 시인·수필가
[동양일보]귀한 것은 희소성을 가져야 한다. 반대로 말하면 흔한 것은 귀하지 않다는 말이다. 이 당연한 말을 고마리 앞에서는 달리 생각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물가에 지천으로 피어 물가로 걸어 나올 것 같은 고마리는 고맙다는 말에서 이름이 붙었다는 말도 있고 번식력이 너무 강해서 ‘인제 그만’이라는 말에서 나왔다는 말도 있다. 나는 고맙다는 말에 의미를 두고 싶다.
꽃의 여왕인 장미가 후미진 물가에 지천으로 피어 더러워진 물을 정화해주지는 않는다.
순결의 백합이 오니로 가득한 늪을 맑게 해주겠는가. 고마리는 더러움 가득한 늪이나 강을 깨끗이 정화한다. 그보다 더 내 마음을 당기는 이유는 고 작은 꽃이 모양도 빛도 아름답다는 것이다. 앙증맞고 희거나 볼그레한 빛으로 수줍게 피어난다. 가난한 집 아이들처럼 왁자하게 가득 핀다.
어려서 우리 집은 열댓 명의 아이들로 벅적댔다. 우리 형제가 다섯에다 시골에서 공부하러 올라온 사촌 형제들이 늘 서넛은 있었고 체육 선생님이셨던 아버지가 거처할 곳 없는 운동선수들을 집으로 불러들여 늘 버글버글했었다.
모든 질서는 언니의 명령하에서 이루어졌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고등학생이었던 언니가 동생들을 책임지고 돌봤다. 언니가 모이라면 모이고 밥 먹으라면 먹고 싸우다가도 언니의 한 마디에 싸움을 그쳐야 했다.
우리 모두를 안방에 앉혀 놓고 ‘이거리저거리’를 하거나 끝말잇기를 하거나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줬다. 겨울에는 공기놀이를 편 갈라서 하고 지는 편이 고구마를 삶아오는 놀이도 했다.
그때는 가시나무를 때서 밥을 했던 시절이라 고구마 삶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떼로 몰려다니며 깔깔거리며 고구마를 삶았다.
어디를 가나 우리는 떼로 몰려다니고 떼로 몰려 놀았다. 담 너머의 친구가 그리 필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부자가 아니었고 형제는 많았다. 할머니는 ‘에구, 우리 고마리 같은 새끼들’이라고 말했다. 나는 고만고만한 새끼들이란 뜻인 줄 알았다. 아직도 정확한 뜻을 알지는 못하겠지만 어쩌면 고마리 풀처럼 오소록이 모여 있는 모습을 말씀하신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 형제 중 누구도 못된 짓을 한 사람은 없었고 건강하고 명랑하게 잘 자랐다.
고마리는 작은 꽃이지만 꽃 모양이 여물고 색이 곱다. 흰색과 연분홍, 붉은 기운이 도는 꽃으로 웨딩부케를 연상케 한다. 고만고만한 것이 물가에 다보록이 모여 있는 모습에 한참씩 머물러 보고 있다 보면 어린 날의 우리 형제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고마리는 구황식물로 재배한 적도 있었고 항산화 작용을 하기도 하고 나물로 먹기도 했고 차로 마시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은 고마리를 먹는 사람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어느 책에는 고마리는 그냥 잡초라고 적혀 있다.
그냥 잡초라고 하기엔 너무 예쁘다. 마구 잡초처럼 자란 내 형제도 잡초가 된 사람은 없다. 고마리를 보면 잡초와 화초의 구분을 없애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너도 자세히 보아야 예쁜 것처럼 고마리도 자세히 보면 정말 예쁘니까 말이다. 올해도 도랑 가에 고마리가 소복이 자리를 잡았다. 예쁜 꽃을 피울 준비로 시끌벅적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