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병원 권수길 간호사

[동양일보 박현진 기자]1958년 청주의 그리 넉넉지 않은 집안에서 태어나 어렵게 학창시절을 보냈다. 청주고를 졸업하고 청주에서 제일 멀리 떨어진 부산대에 원서를 넣었다. 입주 가정교사 등 갖은 알바를 해가며 무역학과를 졸업하자마자 코오롱에 스카우트 됐으나 4달 만에 퇴사하고 제일은행에 입사해 7년을 근무했다.

34살 되던 1991년 충북대 사범대 영어교육과에 지원했다. 4년 뒤 수석 졸업과 함께 임용고시 수석합격으로 제천광산고, 충주여고 등을 전전하며 7년간 교직에 매진했다. 그 기간에는 전교조 생활도 열심히 했다. 45살이 되던 해 청주로 넘어와 영어학원을 차리고 16년간 운영했다. 돈도 많이 벌고 제자도 많이 생겼다. 학원을 운영 중이던 2015년 또 시험을 봐 충북보건과학대 간호학과에 입학했다. 세 번째 대학을 졸업하고 초로에 청주효성병원 평직원으로 근무하는 사람, 그는 예순여섯 살 권수길 간호사다.

대체 뭐 하는 사람일까. 이 사람의 진짜 직업은 뭘까. 앞으로 또 진로를 바꿀까? 많은 것이 궁금했다.

“서울로 대학도 가고 싶었고 유학도 가고 싶었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 친구들과 나란히 걷지 못한 ‘한’이 있었나 봅니다. 학비를 벌기 위해, 가정을 위해 늘 일을 해야 했으면서도 내 속 깊이 자리한 학업에 대한 열정은 어쩔 수가 없었지요”

선한 미소의 첫인상과는 달리 권 간호사는 스스로 반골기질이 강하다고 했다.

 

고3 때는 사립대 진학할 만한 형편이 아닌데도 입시실적을 위해 연‧고대를 권한 선생님께 반항하느라 아예 부산대로 진로를 정했다. 졸업 후 당시 내로라하던 대기업 코오롱 원단수출부에 입사해서는 거래처와의 술자리 밤낮없어 이러다 사람꼴 아니겠다 싶어 뛰쳐나왔고, 규칙적인 생활을 기대한 제일은행에서는 7년 근무하고 대리까지 달았지만 대출 관련 편법이 많은 것에 스스로 질려 또 박차고 나왔다.

교단에 서서는 뜻이 좋아 합류한 전교조가 조직이 비대해지자 관료화되는 게 거북했고 당시 회계가 허술한 교육계의 수당과 교재를 통한 리베이트 등이 눈꼴 사나워 사표를 냈다.

16년 학원 운영으로 돈과 명성을 얻었지만 어느 순간 학생들에게 잔소리를 많이 하는 권위적인 ‘꼰대’로 변해버린 자신이 싫어 또 접었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말랬다’고 스스로 까마귀 굴을 뛰쳐나온 백로가 된 셈이다.

하지만 마지막 간호학과 선택은 전과 달랐다.

“당시 82세 어머니가 넘어져 고관절을 다치시는 바람에 재활치료를 위해 장기입원을 해야 했어요. 그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한심했죠. 내가 직접 전문인이 되어 어머니를 간병해야겠다는 생각에 간호학과를 가게 됐죠”

그렇게 간호사가 돼 모친이 세상을 떠나기 전 6개월은 모실 수 있었다. 그 일이 세상에 태어나 가장 잘한 일인 것 같다며 그렇게라도 해 드린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으로 현재도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쉽지만은 않다고 했다. 병원의 현실이란 게 환자는 많고 간호사는 모자라 때로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끼니 거르기 일쑤다. 하지만 어머니를 케어한 경험이 있기에 그 마음으로 환자를 대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나이도 ‘적당히 먹은’ 남자 간호사의 응대가 통했는지 특히 노인 환자들에게 인기가 많다. 덕분에 여기서 부르고 저기서 호출해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지만 그게 또 재미고 보람이라는 권 간호사.

환자 살핌 외에 6년 차 중견 간호사로 60여 명의 후배 간호사도 관리해야 하는 등 시간이 부족한 매일을 보내면서도 그는 지난해 미국 간호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전공인 영어 실력도 썩히지 않을 겸 공부는 공부대로 또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변화무쌍했던 삶에서 이 길이 마지막 길이 될 것이라는 권 간호사.

그는 은행 재직 시절 만난 아내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뒀다. 딸은 결혼해서 충주 의료원에 근무하고 있고 37살 아들은 미혼으로 두어 달 전 인턴을 끝낸 성형외과 의사다. 어쩌다 보니 의료가족이 됐다. 얼마 전 생일 때 아이들이 “‘열심히 사는 아빠’를 보고 배우며 자란 덕분에 우리가 이만큼 올 수 있었다”고 인사를 하는데 울컥했단다. ‘잘 살았구나’ 싶었던 것.

“이제 좀 쉬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쉬는 게 익숙지 않다”고 답한다. “쉬는 사람에게는 쉬는 게 일이고, 일하는 사람에겐 일하는 게 쉬는 것”이라며 “10년쯤 더 일하고 70대 후반쯤 되면 좀 쉴 생각”이라는 그의 오늘은 여전히 뜀박질이다.

인생 2막을 넘어 인생 5막쯤은 거뜬히 치러낼 60대 후반의 남자 간호사의 열정에 시선이 모아지는 이유다. 박현진 기자 artcb@d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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