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준 지명연구가·전 음성교육장

이상준 지명연구가·전 음성교육장

[동양일보] 조선시대에는 청소년을 교육하는 국가 기관으로 중앙에는 성균관을, 지방에는 향교를 설치하였으며 조정에서 이곳에 관원을 보내 교육을 담당하도록 하였다. 서원(書院)도 향교처럼 청소년을 교육하는 교육기관의 역할을 담당했으며 오늘날 사립학교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향교는 공자를 모시는 곳이며 현(縣)이라는 행정 구역(오늘날의 군 단위 기관)에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기관이었기에 모두 동일하게 ‘향교(鄕校)’라는 현판을 내걸었지만, 지역을 구분하기 위하여 ‘청주 향교(청주현에 있는 향교), 충주 향교(충주현에 있는 향교)’라 불렀던 것이다.

서원(書院)은 선대의 유학자를 모시면서 유학을 가르치기 위한 사설 기관이며 청주의 신항서원(莘巷書院), 옥화서원(玉花書院), 괴산의 화양서원(華陽書院), 음성의 운곡서원(雲谷書院), 충주의 팔봉서원(八峰書院), 충남 공주의 충현서원(忠賢書院) 등에서처럼 고유한 이름을 지었는데 주로 지명을 바탕으로 지역이나 지형을 묘사하는 이름이거나 아니면 유학적 교훈을 담은 이름이었다.

조선말에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있을 때 서양의 선교사들이 처음으로 서양식 사립학교를 세웠는데 일제에 휘둘리는 힘없는 조정에서는 이 서양식 학교에서 나라를 지킬 인재를 육성해 주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일제에게 나라를 잃은 후에도 선각자들이 신식교육을 위해 사재를 털어 사숙을 세웠는데 사숙이라서 대부분 계몽적, 유학적 이름을 지었다.

이후 일제에 의해 황국신민을 육성하기 위한 공립보통학교라는 신식 학교가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기 시작했는데 행정 구역에 따라 고루 안배하여 들어서기에 주로 지명(지역의 행정명)을 학교명으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점차 인구가 도시로 밀집하게 되고 같은 지역에 여러 개의 학교가 신설되면서 지역명을 먼저 학교명으로 채택하고자 하는 학교 간의 경쟁과 서로 내가 사는 지역의 이름을 학교명으로 하려는 다툼이 생기기도 하였으며 일제에 의해 ‘제일중학교, 중앙중학교’등 특수한 목적의 차별화된 이름을 만들기도 하였다.

그런데 지명을 이용한 학교 이름도 문제가 생기게 될 경우가 있다. 왜냐하면 처음에는 좋은 의미를 가진 지명이 오랜 세월 동안 변이되면서 오늘날에 와서는 이상한 이미지를 연상시키거나 학교 이름으로 사용하기가 불편한 이름이 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청주시 상당구 방서동의 ‘대머리’, 충주시 소태면과 충남 보령시 남포면 달산리의 ‘야동리’,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의 ‘대변리’, 전남 영광군 군서면 만금리의 ‘고참마을’, 전북 부안군 진서면 진서리의 ‘똥섬’, 경남 거제시 일은면의 ‘망치리’, 전북 무주군 안성면 공정리의 ‘사탄마을’, 경남 영산시 웅상읍의 ‘소주리’, 제주도 서귀포시 서호동의 ‘썩은섬’, 경남 거창군 웅양면 죽림리의 ‘유령마을’ 등에 초등학교가 생긴다면 좋지 않은 이미지가 연상되는 학교 이름이 되고 마는 것이다.

충주시 소태면의 야동(冶洞)은 원래 순우리말 지명으로 ‘불무골’로 불려왔다. ‘인근 지역보다 더 높이 솟아 있는 뫼’라는 의미의 ‘붓뫼’가 ‘불무’로 불리다 보니 대장간의 ‘불무’가 연상되어 한자로 ‘야(冶)’로 표기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야동’이라는 줄임말이 생겨나서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고 급기야 야동초등학교는 학교 이름을 바꾸어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나기도 했으며, 실제로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의 대변리(大邊里)에는 ‘대변항, 대변방파제’처럼 지명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대변초등학교의 경우에는 문제가 있으므로 학부모와 학생들의 요구에 의해서 2018년 3월1일자로 ‘용암초등학교’로 개명하기도 했던 것이다.

따라서 지명을 근거로 학교명을 지을 때는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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