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계자 수필가

오계자 수필가

[동양일보]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배우고 싶은 욕망은 발걸음을 재촉한다. 가볍고 즐겁게 찾는 강연장이지만 나오는 걸음은 언제나 무겁다. 유명교수의 말씀이나 신부님의 말씀과 스님의 말씀도 삶의 철학이 있고 살아가는 지혜를 담은 좋은 내용들이지만 나는 늘 식상했다. 이미 책이나 강연을 통해서 접했던 상식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성인들의 말씀들을 다 알고 있으니 욕망과 번뇌 없이 하루하루가 즐겁고 베풀며 이웃이나 지인들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항상 행복해야 옳지 않은가.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

법륜스님의 유투브 방송을 보다가 어느 주부에게 세상 살면서 무엇이 불만이냐고 물었을 때

“형제들이나 친지들이 툭하면 손 벌리고 도와 달라는데 끝이 없으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라고 했다. 스님은 1초도 망설임 없이“당신이 쫄딱 망해서 아무것도 없으면 손 벌리는 사람도 없겠지요, 그게 더 나은 가요?”하셨다. 모두들 감동해서 일어나 박수를 친다. 나는 순간 반짝하는 아이디어로만 여겼다.

내 길벗의 시동을 걸었다. 목적지도 없이 달렸다. 가다보니 이십여 년 전부터 자주가든 계룡산 옆구리 작은 공원이다. 지난 장마 때는 절벽바위로 폭포수를 내뿜어 웅장함을 보이더니, 간밤에 곱게 내린 비는 모시적삼 하얗게 입혀 수줍은 조선의 여인으로 꾸며놓았다. 전에는 이런 분위기에서 안개 같은 그리움이 가슴을 촉촉하게 했는데 이제는 그리움도 사랑도 푸석푸석 말라 버렸나보다. 요즘 의문을 품은 속마음만 잔디밭에 가득 펼쳐 놓았다.

나는 왜 남들처럼 쉽게 감동 받지 못할까? 나도 애잔하고 슬픈 영화를 보면 울고, 친구의 아픔에 내 가슴도 아프다. 내가 강한 척 하는 것은 누구보다 여리고 약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왜 감동이 없을까. 생각은 점점 꼬리를 문다.

저만치 관리 사무소 옆에는 까치들이 쓰레기통을 뒤진다. 참새들은 주위에서 까치의 눈치를 살피며 맴돈다. 건물 안에서 누군가 나오자 까치들은 날아가고 그 자리를 참새들이 재바른 동작으로 남은 것이 없나 살핀다. 먹을 것이 쓰레기통에만 있는 것이 아닌데 저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불쌍타. 넓은 잔디밭에 꼬물거리는 벌레도 많을 터이고 계룡산이 품고 있는 먹이들 또한 풍요로울 터이다. 저렇게 우매한 짓이 오직 눈에 보이는 것만 추구하는 미물들뿐만이 아닌 것 같아 슬프다. 우리 사는 세상에도 푸석푸석 가슴이 말라붙은 …….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나는 가슴을 쳤다. 내가 잘못 담은 탓이었다. 법륜스님의 그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깊은 삶의 철학이었음을 몰랐다.

내가 소중한 명언들, 덕담들을 가슴에 담지 않고 머리에 담아서 지식으로만 활용하려했으니 알고 있는 세상 이치를 온새미 내 것으로 삼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번뇌를 털어내는 방법만 알았지 털어내지는 못했다. 내 머리는 이론 생산 공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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