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득 수필가
[동양일보]꽃이 참 묘하다. 선홍색 꽃이 강렬하게 피어 타래처럼 꼬여 달렸다. 죽 늘어선 꽃들이 가녀린 꽃대를 휘감으며 나선형 계단처럼 타고 오른다.
왜 비비 꼬였을까. 꽃을 보면 한쪽으로만 주르륵 나 있다. 그러면 아래 꽃들이 광합성을 못 한다. 아래에 있는 꽃들이 빛을 받게끔 몸을 꼰 거라는데, 골고루 햇빛을 받게 하려는 놀라운 생존 전략이 아닐 수 없다.
꽃대를 나사 모양으로 감고 올라가면서 분홍빛과 흰빛이 적절하게 어우러진 꽃송이들은 흰색도 예쁘지만, 붉은색은 숨을 멈추게 할 만큼 강렬하다. 색은 자연이 스스로 표현하는 색. 인공적인 색과 구분된다. 우리는 매일 색을 보고 느끼며 살아간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7월의 풀밭. 초록빛 천지에서 온몸 비틀어 마지막 한 방울의 색소까지 짜내어 낸 분홍빛은 환상적이다.
상당산성으로 작년에 꽃 핀 곳을 네 번이나 갔다. 꽃 필 시기를 못 맞추는가 싶었는데, 식생이 변했는지 필 기미가 없다. 할 수 없이 부모산으로 갔다. ‘졌으면 어떡하나’는 기우였다. 봉분封墳 언저리 풀섶에 불쑥 솟은 가녀린 꽃대가 반긴다. 불볕더위에 온몸 비틀어 선홍색 꽃다발 선사하는 타래난초는 부모산 곳곳 산소에 피어 있다.
꼬임 하나하나에 꽃이 피어 있다. 외로운 영혼의 넋이런가. 산소 주위에 많이 피니 망자의 간절함이 깊은가 보다. 망자가 한이 많아서 떠나지 못하고 108가지 번뇌를 꼬며 자손을 위해 복을 빌어 준 뒤 구천 길로 향한다는 전설이 있다. 실타래처럼 번뇌를 백팔 번 꼬고 또 꼰다. 보통 30~40개 정도 피는데 꽃이 108타래를 풀려면 3년 정도 걸린다. 타래처럼 꼬인 번뇌를 하나씩 하나씩 풀어내면서 연을 끊는 데 3년이 걸리는 거다.
타래난초의 출생은 신비롭다. 씨가 먼지처럼 작아서 ‘배젖’이 없다. 이웃 동냥젖의 도움을 받아야만 자랄 수 있는데 풀뿌리에 붙어사는 난균卵菌이 어미 역할을 한다. 균사체 방식으로 붙어서 자라는 아주 작은 식물. 더부살이하는 데 붙어서 연명하는 여린 난초인 셈이다. 기생하는 식물에 또 기생해서 겨우 살아남은 귀해서 더 아름다운 꽃이다.
꽃이 작으니 잎도 아주 작다. 감고 올라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곧은줄기에 꽃만 나선형으로 핀다. 열매를 매단 꽃들도 많다. 타래난초는 씨앗을 엄청나게 많이 만든다. 밥알 크기의 작은 꽃 한 송이에서 수만 개의 씨앗을 만드는 것이 타래난초의 번성비결이다.
살다 보면 인간관계가 얽힐 때가 있다. 엉킨 실타래를 무조건 풀려고 하지 말고 한 발 뒤로 물러서서 차분하게 응시한 뒤 실마리를 잡든지 던져버리면 되는데 쉽게 못 버리며 산다. ‘망자의 꽃’, ‘번뇌의 꽃’이라고도 하는 타래난초를 보며 두꺼운 나의 아상我相을 본다.
한여름 강렬한 햇볕 속에서 당신을 위해서만 피는 꽃. 인생이 꼬였다 싶으면 타래난초를 보며 풀 일이다. 삶이 꼬일 때마다 쉽게 포기하고 주저앉기 쉬운 요즘. 꼬일 대로 꼬인 세상 번뇌가 실타래 풀리듯 술술 풀리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