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윤순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 부면장

황윤순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 부면장.

[동양일보]강내면에 하얀 감자꽃이 한창이다. 뿜어오르는 물기를 맞으며 감자가 조금씩 몸통을 늘리는 중이다. 이 작은 줄기 채소는 우리에게 자연의 소중함과 청렴하고 소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감자는 소박한 이미지를 가진 식재료로 조선 후기에 본격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하였다. 조선시대에 감자는 북저 또는 토감저라고 불렸다. 조선에 도입된 초기에는 기근이나 흉년 시 백성들의 굶주림을 해결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는데, 이는 벼나 밀에 비해 재배기간이 짧고 쉬우며, 수확량이 많은 작물이었기 때문이다.

겉보기에는 평범하지만, 그 속에는 영양가가 풍부하고 다양한 맛과 형태로 즐길 수 있다. 조선시대 식탁에 올려진 감자요리로는 감자전과 감자조림, 감자국, 감자구이 등이 있으며, 현대에 이르러 서양권의 영향으로 포테이토 피자, 감자칩, 감자샐러드, 뇨끼 등의 다양한 요리 형태로 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감자의 서민적 이미지는 서양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 <감자를 먹는 사람들>에는 바쁜 하루를 지내고 지친 얼굴로 작은 등불 아래서 커피와 찐 감자를 먹는 서민들의 고단한 모습이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은 네덜란드 남부 누에넨이라는 도시에 사는 가난한 소작농 가족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그림의 왼쪽 위에는 시계가 걸려있는데 오후 7시를 가르키고 있다. 아마도 간단한 저녁식사의 한 장면으로 유추된다. 이 그림이 그려진 배경인 1800년대 유럽에서 ‘감자’는 가난의 상징과도 같았다. 이때 감자는 굶주린 유럽을 살린 기특한 작물이었다.

그러나 감자가 처음부터 유럽 사람들의 식탁에 올랐던 것은 아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들어온 감자는 이상한 생김새와 독이 있다는 소문에 200여년 동안 가축의 사료로만 쓰이다 18세기 초 영국이 식민지였던 아일랜드에 나누어주었는데, 여러 조리법을 실험해보다 껍질을 벗기고 삶아 먹어도 몸에 탈이 안 나면서 즐겨 먹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감자의 값어치는 유럽 사람들이 전쟁과 기아를 경험한 후 인정받기 시작하였다. 영국에서는 엘리자베스 1세가 감자파티를 열었고, 독일의 프리드리히 2세는 외국과의 전쟁을 위한 군대 식량으로 감자를 선택하여 농민들에게 재배를 강요하였다. 프랑스의 파리망티에는 루이 16세 왕과 왕비에게 감자 꽃 장식을 하게 하여 왕족과 귀족들에게 감자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독일의 문학가 괴테는 ‘신대륙에서 건너 온 것 중에 악마의 저주는 담배이고, 신의 혜택은 감자이다’라고 하였을 정도로 고마운 식물이었다. 특히 감자튀김은 맛이 좋아서 신분에 상관없이 즐겨 먹었는데, 나폴레옹도 감자튀김을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당시 이 감자 덕에 아일랜드 인구가 급격히 불어나고, 차차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도 주식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19세기 들어서는 노동자들의 대표적인 음식이 되기도 했다. 특히 하얀 생선살 구이에 감자튀김을 곁들인 ‘피시 앱 칩스’라는 음식의 인기는 영국을 대표하는 음식일 뿐만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소스를 활용한 한국식 ‘피시 앤 칩스’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이처럼 감자는 동서양과 귀족과 서민 등을 막론하고 청렴하고 소박한 삶의 상징과도 같다. 감자 한 알에서 우리는 소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고, 이러한 특성은 청렴한 사람이 가져야 할 겸손함과 오만하지 않는 태도와 연결될 수 있다.

감자를 즐겨 먹는 것만으로도 일상생활에서 소박한 삶을 영위하는 청렴의 삶과 일치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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