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숙 수필가

김진숙 수필가

[동양일보]올케언니가 친정 식구 단톡방에 ‘아버님 그리운 날’이라는 글과 함께 돌아가신 아버지 사진 몇 장을 올렸다. 평생 가슴에 품고 살 줄 알았는데 잊고 사는 날이 더 많아진 아버지. 오랜만에 뵙는 아버지 얼굴은 조금 낯설기까지 했다. 주변의 빈축을 살 정도로 딸 사랑이 유난했던 분인데 딸은 어느새 아버지를 잊어가고 있었나 보다.

언젠가 받은 아이돌보미 보수교육중 아빠 효과는 엄마 효과의 3배에 달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아빠의 사랑이 아이들의 인격 형성에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일 것이다. 부족한 것 많은 내가 이렇게나마 사회의 구성원 역할을 해내고 있는 것도 아버지에게서 받은 사랑의 역할이 컸을 것이다. 자라는 내내, 웅크린 등 두드려준 구수한 이북 사투리의 아버지가 계셨기에 내가 보는 세상이 조금 더 밝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평생을 집 한 칸 지녀보지 못하고 사셨다. 당신 이름 석 자 박힌 문패를 만들어 놓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사셨지만 그 문패는 끝내 아버지 서랍 속에서 나오지 못했다. 그러다가 딸이 집을 장만해서 결혼을 하니 그리 좋으셨던가 보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집 정리를 마치기도 전에 너풀너풀한 조화를 한 아름 안고 딸의 신혼집을 찾아오셨으니 말이다.

“생화를 사고 싶었는데 금세 시들 것 같아서 조화로 사 왔다.”

현관의 신발장도 쓸어 보고, 베란다 창문도 열어 보고, 연탄 광도 열어 보며, “좋다” “좋다” 하시던 아버지.

딸의 집들이 선물로 꽃을 고르면서 그 마음이 얼마나 좋으셨을까? 요건 색이 고와서, 조건 모양이 예뻐서, 요것 저것 고르다 보니 한 아름이 된 꽃다발을 들고 그 발걸음은 얼마나 흥이 났을까?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구석구석 꽃을 장식했다. 신발장 앞에도, 화장실에도, 거실에도, 아버지가 고른 꽃들이 자리를 잡았다. 꽃 장식된 집안을 몇 번이고 둘러보던 아버지는 “이렇게 집도 좋은데 좋은 집에서 행복하게 잘 살 거라.” 눈시울까지 붉히며 간곡히 당부하셨다.

그 뒤 그 조화는 오랜 시간 우리 집을 장식했다. 꽃이 너무 많아 무당집 같다는 남편의 투정과, 지인들의 곱지 않은 눈총도 꿋꿋하게 버텨냈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라는 아버지의 당부대로 나는 딸 둘을 낳고 알콩달콩 행복한 세월을 살았다. 아버지의 염원이 하늘에 닿았던 모양이다.

이제는 사진으로만 뵙는 아버지, 그리고 이제야 무릎을 치는 한 가지 생각, 우리 아버지가 꽃을 좋아하셨구나! 꽃 같은 것은 들먹일 새도 없이 팍팍하게 사셨지만 우리 아버지가 꽃을 좋아하셨구나! 당신 이름으로 된 집을 사서 한 번쯤은 꽃병에 꽃도 꽂으며 살고 싶으셨겠구나! 각박한 세월을 살면서도 소년 같은 감수성을 잃지 않으셨던 아버지께 시 한 수 지어 올리는 것밖엔 할 수 있는 게 없는 딸은, 오늘도 평생 가난했던 아버지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

'변두리 변두리로만/지척지척 헤매 돌다//황토 흙 몇 삽 떠내고/편안하게 누우셨다//찔레꽃/진한 향내가/슬몃 따라 눕는다//평생을 돌아쳐도/집 한 칸 장만 못한//문패 없는 삶 저 켠에/낯 설은 비석 하나//아버지/새집 곱게 앉혔다/경주 김공 돈규 묘.'(김진숙 졸시 ‘새집’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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