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우 충북청소년근로보호센터 청소년 인턴

권혁우 충북청소년근로보호센터 청소년 인턴

[동양일보]해가 저물며 오렌지색 하늘이 비추는 거리를 갓 7교시를 끝낸 고등학생들이 채울 때, 누군가의 하루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두꺼운 내신 부교재와 학습지를 담은 무거운 가방과 교복을 입고, 학원이 아닌 식당으로 향하는 발걸음. "사장님 안녕하세요!", 경쾌한 인사와 함께 그 날의 알바가 시작된다. 이는 단순한 일화나 극소수의 사례 아닌, 우리 사회의 숨겨진 현실이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근로 청소년들. 그들의 하루는 24시간으로도 모자라다. 등하교와 출퇴근을 동시에 하는 이들의 삶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준다. 학업과 일을 병행하며, 그들은 청소년과 근로자라는 두 가지 정체성 사이에서 끊임없는 줄다리기를 한다.

'근로' 청소년인가, 근로 '청소년'인가. 이 모호한 경계는 그들을 더욱 취약한 위치에 놓는다. "아직 청소년이니까 이해해야 해"라는 말로 그들의 권리가 무시되는 한편, "청소년도 사람이니까 책임져야 해"라는 이중 잣대로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청소년들에게 부담을 지운다. 이런 딜레마 속에서 그들은 노동권과 학습권 모두를 제대로 보장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젊을 땐 고생도 사서 한다'는 말은 과연 이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한때 노력 신화로 칭송받던 이 아포리즘은 이제 '노오력'이라는 냉소적 신조어로 변질되었다. 경제 성장이 둔화되고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는 현실에서, 이 말은 청소년들에게 더 이상 희망이 아닌 부담으로 다가온다. 빠듯한 살림을 채우기 위해, 혹은 부족한 지원을 메우기 위해 시작한 알바. 그러나 이는 단순한 '젊은 날의 고생'을 넘어선다. 공부 시간을 빼앗겨 남들보다 몇 배의 노력을 해야 하고, 또래와 자신을 비교하며 자존감이 낮아지는 경우도 많다. 사서 한 고생이 더 큰 고생을 불러오고, 결국 아무런 가치도 남기지 못한다면, 과연 이런 '고생'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한국 사회에서 배려와 존중은 마치 지나간 시대의 에피타프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단순히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은 해답이 될 수 없다. 우리 사회가 삭막해진 이유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한다. 무례한 손님, 차가운 동료, 이해 없는 사장님들. 이는 단순히 개인의 인성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새로운 공존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청소년의 권리를 존중하면서도 그들의 성장을 돕는 일터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이는 청소년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 전체의 과제다. 근로 청소년들의 하루가 단순한 생존이 아닌 진정한 성장의 기회가 되려면, 사회 전반의 인식 변화와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그들의 이중적 지위를 인정하고, 그에 맞는 보호와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노동법 준수는 물론, 학업과 일을 병행할 수 있는 유연한 근무 환경 조성, 심리적 지원 등 다각도의 접근이 요구된다.

우리는 지금 사회의 미래를 좌우할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근로 청소년의 현실은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이들을 외면한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 또한 어두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가 함께 노력한다면, 이들의 땀과 노력이 헛되지 않을 것이다.

청소년 근로자들의 하루하루가 단순한 생존이 아닌, 꿈을 향한 의미 있는 발걸음이 되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유산일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일하고 있을 청소년들을 생각하며, 우리 모두가 그들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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