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옥란 시인, 시집 "어떤 날은 말이 떠났다" 출간
새벽길 걷는다
가로등에 몸을 넓힌 벚나무 품이 넓어졌다
측량할 수 없는
생각의 무게들을 달빛처럼 사뿐히 내려놓는 나무의 새벽
허공 속에 가려진 잎의 그림자
아직 다가오지 않은 발밑 그림자를 눈여겨보며
한 뼘씩 그늘을 짓고 있다
소음과 공해 속에서도
작년 봄 향기로운 기억들을 가지마다 쏟아내며
뿌리는 내 몸의 의상처럼 치수를 재고
생의 꽃무늬를 재단하고 있다
오늘은 어둠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나의 뻣뻣한 두 다리를 자신의 그늘 속으로 들여 쉬게 한다
그 아래서 나방의 여린 날개가 태어나고
뿔 달린 하늘소가 새벽 그림자를 따라나서기도 했다
벚나무 아래 물길의 긴 꼬리 반짝임도
수초 사이에서 몸을 뒤척이며 뒤돌아본다
나무가 고요할 때는
세상의 어깨를 품는 시간이다
시 <하루치의 그늘> 전문
윤옥란 시인의 시집 어떤 날은 말이 떠났다가 도서출판 상상인에서 출간됐다. 1부 달아난 꿈의 지느러미, 2부 젖은 생의 무늬, 3부 저 얇고 단단한 흰빛, 4부 숨 몰아쉬며 다가오는 착란으로 궁성된 이번 시집은 인간의 아름다움은 물론 욕망 회한 사랑 등 온갖 형이상적 요소들이 가득 들어 있다.
문효치 시인은 추천사를 통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는 어떤 빛, 어떤 소리가 날까. 윤옥란 시인은 이 경계에 처한 사람들을 수없이 관찰하면서 그의 철학과 문학을 일으키고 있다. 백 년 안팎의 생애 가운데 어쩌면 가장 절실한 오뇌의 순간을 지켜보면서 시인은 그 현장에서 떠돌고 있는 영기靈氣를 낚아 올리거나 포획하여 그 나름의 언어의 집을 짓고 있다.”고 말한다.
윤 시인은 “산소마스크를 낀 절박한 분들, 종일 여기저기서 울려대는 모니터 알람 소리 요양원으로 출근하는 나는 ‘그냥’이 그렁그렁 가래 끓는 소리 같아서 어떤 날은 말을 잃어버리기도 했다”며 “그분들에게 한 권의 몸의 말을 드린다”고 전했다.
윤옥란 시인은 강원도 홍천 출생으로 명지대 문화예술대학원을 졸업했다.
2018년 미네르바로 등단하고 시집으로 날개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어떤 날은 말이 떠났다를 출간했다.
△동서문학상 입선 △보훈문예작품 공모전 우수상(2회) △농어촌 문학상 우수상 △서울 암사동 유적 세계 유산 등재기원 문화작품 공모전 우수상 △근로자문학제 은상(2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시 대상을 받았다.
도복희 기자 phusys2008@dy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