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고 힘든 탈북민과 하나 되어 살 수 있는 길 찾아
암 시한부 선고 후 못다한 일 해야겠다 찾아 나서
내 재산은 하나님이 이웃과 더불어 살라고 내려주신 것
[동양일보 박현진 기자]청주시 청원구 율량동 945번지 GS편의점이 있는 건물의 1층 모퉁이 11평 공간에는 율량동 거주자라면 알만한 작은 쉼터가 있다. 10여명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커다란 테이블과 취사 가능한 주방, 텔레비전 등이 있는 이곳의 여름은 시원하고 겨울은 따듯하다. 상근 직원도 있어 들르는 손님을 반가이 맞는다. 이곳은 골목길을 누비며 쉴 새 없이 폐지를 줍는 노인들을 위해 건물주인 토목설계회사 ㈜지명 청주지사가 마련한 무료 쉼터다.
쉼터에서 150여m 떨어진 인근 건물의 2층에는 청주의 모든 문화와 역사적 자료를 연구하고 수집하는 ㈜지명 부설 JM미래문화연구원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임대료를 내는 공간이다.
다시 몇 블록쯤 걸어 율량동 873-5 장터 국숫집이 있는 건물 4층에는 건물주의 아내가 운영하는 아동복지시설 ‘반짝이는지역아동센터’가 있고 3층에는 건물주가 이사장으로 있는 북한이탈주민 쉼터 '(사)빛가운데’가 있다. 지난 5월, 월 100만원의 임대 수익을 올리던 학원을 내보내고 오롯이 북한이탈주민을 위한 봉사공간으로 리모델링 했다.
사업가, 건물주 또는 임차인으로 돈을 내고 월급을 줘가며 이 모든 공간을 조성한 사람, 회사 정관에조차 매출액의 일정 부분은 사회복지사업에 투자한다고 명시한 사람, 그는 바로 ‘선한 이웃이 되라’는 기독교 정신을 실천하며 세상의 어둠을 빛으로 이끄는 작업을 하고 있는 김윤경(65) ㈜지명 대표이자 (사)빛가운데 이사장이다.
“2022년 5월 방광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고 깨달았어요. 건강하게 오래 살 줄 알았는데 나도 죽을 수 있다는 것을요. 그 시간이 오기 전 빨리, 못다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발병 이후 1년 반 동안 여러 번의 대형수술을 받으며 조급함에 아픔도 잊고 이런저런 일들을 추진하다 보니 기적처럼 건강도 좋아졌다는 김 이사장.
그는 충북 영동에 본사를 둔 지명(地明)이라는 회사 이름처럼 지역을 밝게 만드는 일에 앞장서 왔다. 그 결과 영동 어린이들에게는 키다리 아저씨로,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서는 그린노블클럽 회원으로 헌액되기도 했다.
시작은 하루 10만 원씩, 1년에 3650만원 정도만 기부하자 했던 것이 어느덧 연평균 2억 정도로 늘었다고 돌이켰다.
이런 봉사는 온전히 가족의 동의가 있어 가능했다. ‘내가 가진 재산은 개인 소유가 아니고 하나님이 이웃과 나누며 살라고 주신 거’라는 데 대해 기독교 신자인 가족들이 모두 공감하고 동행에 나선 덕분이다.
실제로 현재 반짝이는지역아동센터의 대표는 그의 아내 황미희(64)씨고 센터장은 며느리 설현민씨이며, 그가 운영하는 (사)빛가운데는 사위 김영욱씨가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가족에게 임금 지급이 불가한 비영리법인의 특성을 감안하면 사실상 가족 전체가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셈이다.
(사)빛가운데는 지난 5월 21일 통일부로부터 사단법인 허가증을 받고 북한이탈주민 정착 지원과 고려인, 이주배경, 다문화 등 한민족 자녀들의 장학 지원에 주력하고 있다. 그의 지론은 ‘하나’로 살아가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북한주민으로 살며 제 나라 핍박을 견디다 못해 목숨 건 탈출을 하고 나서도 여전히 손님, 나그네, 이방인 취급을 받는 사람들, 그들의 이웃이 되어 함께 살아가기 위함이다.
계기가 있다고 했다. 2017년 처음 북한이탈주민을 만나 어떤 도움을 원하느냐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은 “같이 놀자”였단다. 그 말 한마디에 진정한 도움은 함께 하는 것임을, ‘이웃이 되라’는 하나님의 말씀과도 맥락을 같이함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해 회사 직원들과 이탈주민 300여명이 함께한 한마음축제에 이어 지난달 1회 북한이탈주민의날 행사까지 ‘끼리끼리’, ‘따로따로’가 아닌, 섞여서 어루만지는 상생 방안을 찾아 지원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김 이사장은 일방적인 지원만을 바라는 북한이탈주민의 태도도 바뀌어야 한다고 일갈한다. 배급에 익숙하다 보니 받는 걸 당연시하고 경품 추첨마저 차별한다고 항의한단다. 한국에 온 이상 한국 문화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더하여 혼자서 조용히 하는 봉사에 한계를 느낀 김 이사장의 생각도 변하고 있다. 개방하고 널리 알려서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야 시스템이 구축되고 체계적이고 현실적인 지원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회원모집도 하고 공익법인 허가 신청도 제출했다.
어둠 속 소외된 많은 이들을 빛의 한가운데로 이끌어내기 위한 그의 발걸음은 오늘도 분주하다.
김 이사장은 59년 청주 출생으로, 중앙초, 세광중, 청주고를 거쳐 서울대 토목과를 졸업하고 서울서 사업 중, 모친 병환으로 귀향하라는 부친의 권유에 따라 94년 하향, ㈜도명 엔지니어링으로 사업을 시작해 오늘에 이르렀다. 박현진 문화전문기자 artcb@dy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