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순 동화작가

김송순 동화작가

[동양일보]나는 우리 동네에 있는 농협 로컬푸드 매장을 좋아한다.

로컬푸드 매장에는 옥수수 고추 호박 가지 상추 열무 파 배추 등 여러 가지 종류의 야채가 진열되어 있는데 청주 근교에서 농사지은 거라 싱싱하고 맛이 좋다. 그리고 내가 로컬푸드 매장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곳에 가면 토종 작물들을 만날 수 있다.

농사짓는 분들이 매년 심고 있는 토종 작물을 로컬푸드 매장에 가끔씩 내다 놓기 때문이다. 그 토종 작물은 개량종 작물과 모양과 색이 달라서 금방 알아볼 수 있다. 그것들은 맛이 좋아서 한 번 먹어본 사람들은 그 물건이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는데 양이 많지 않다. 그래서 저녁 늦게 가면 다 팔려 버리고 남 있는 게 없다.

그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여름에 나오는 ‘사과참외’다. ‘사과참외’는 옅은 초록색인데 모양이 사과처럼 생겼다. 그런데 그걸 손에 들고 밑동을 살펴보면 보통 참외처럼 둥그렇게 골이 파여 있다. 먹어보면 멜론처럼 달콤하고 향긋한 향이 있다. 개량종 참외에서는 맡을 수 없는 향기가 있는 거다.

내가 ‘사과참외’를 알게 된 것은 ‘토종 씨앗’에 대한 동화를 쓰기 위해 자료를 모으면서다. ‘토종 씨앗’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쓰고 싶다는 열망만을 갖고 시작한 일이었기에 많은 책을 읽어야 했고, 농사짓는 곳을 찾아다니고 전문가들을 만나러 다녀야 했다. 그렇게 이야기들을 모았고 마침내 <할머니의 씨앗 주머니>라는 장편동화를 완성할 수 있었다.

‘사과참외’는 동화 속에서 주인공 엄마가 기억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참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런데 나는 그동안 사과참외를 먹어본 적이 없었다. 그저 사진으로만 보면서 이야기의 소재로 삼았던 거다. 사과참외뿐만 아니라 붉은쥐이빨옥수수, 호랑이콩, 조선오이, 깐치참외, 선비콩 등 이야기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토종 작물들도 실물로 만나지 못한 게 대다수였다. 그렇게 토종 작물은 우리 곁에서 사라지고 있었던 거다.

나는 2018년도에 <할머니의 씨앗 주머니> 책을 출간하고 나서도 사과참외를 특히 마음에 두고 살았다. 토종 작물이 있는 곳이면 그것이 있는지 늘 기웃거렸다.

그러다 몇 년 전 여름에, 우리 동네에 있는 로컬푸드 매장에서 사과참외를 드디어 만날 수 있었다. <할머니의 씨앗 주머니> 동화 속에서, 주인공 아이가 그렇게 아끼고 귀하게 여겼던 사과참외가 매대 위에 그림처럼 놓여있었다.

나는 그날 그 사과참외의 생산자인 ‘박ㅇㅇ’ 아저씨에게 얼른 전화를 걸었다. 로컬푸드 매장에 나와 있는 채소 봉투에는 생산자 이름과 연락처가 적혀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저씨는 사과참외 씨앗을 매년 심고 계셨어요?”

전화하면서 나도 모르게 울먹이고 말았다. 내가 쓴 동화 속 인물 중에는 토종 씨앗으로 농사짓는 풀잎이 아빠가 있었는데, 그 풀잎이 아빠를 진짜로 만난 것만 같아서였다. 그런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 아저씨는 풀잎이 아빠랑 진짜 비슷한 사람이었다. 베트남에서 온 부인이 있었고 초등학교 다니는 딸이 있었고…

창작 활동을 하다 보면, 현실 속에서 내가 창작한 인물하고 비슷한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비슷한 장소에 가기도 한다. 사과참외 등 여러 가지 토종 작물을 매년 심고 있다는 박 씨 아저씨도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오늘도 집에 가는 길에 로컬푸드 매장을 들를 것이다. 그 아저씨가 내다 놓은 사과참외를 오늘은 살 수 있길 간절히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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