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선 동양일보 주필
[동양일보 유영선 기자]
청주시립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강익중 화가의 작품은 몇 번씩 보아도 새롭다. 작품 수도 워낙 방대하지만, 작품 하나하나마다 다른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것들’만 읽어보아도 시간이 금방 가고, 삼인치 작품 ‘삼라만상 해피월드’는 말 그대로 삼라만상을 보듯 발걸음이 떼지지 않는다. 그러나 강익중 화가의 상상력을 지나서 철망 위에 걸린 ‘실향민들의 그림’ 앞에 서면 가슴이 짠해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네 번째 시립미술관에 가던 날, 나는 실향민들의 그림 앞으로 직진했다.
그리고 아예 한 점씩 카메라에 담았다. 어쩌면 그렇게도 자세히 그렸을까. 재미로 그 그림들을 보기엔 그림 내용이 너무도 절실했다.
“압록강, 대동강, 성천강, 백천, 칠보산, 묘향산, 용골산, 용천골, 상앗골, 정평역, 지경역, 철도길 건너서, 개울 옆, 산에서 내려오는 길, 뒷산, 앞들, 우물가, 기와집 우리집, 외딴집, 논, 창고, 초등학교 마당, 극장, 삼신 여관, 말 무덤, 아바이 고향...”
그림을 그리곤 행여 잊을세라 기억을 떠올려 그림 속에 꼼꼼히 설명을 적었다. 설명 하나하나마다 그리움이 철철 배어난다. 강익중은 10년 전부터 실향민 그림을 6000점 정도 모았다고 했다. 실향민들은 꿈에서도 잊혀지지 않는 어린 시절 살던 동네와 집, 약도 등의 기억을 그림으로 그렸다. 이제는 갈 수 없는 곳. 그래서 이 그림들이 절절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2016년 9월, 런던에 갔다가 템즈강에서 이 그림들을 보았다. 밀레니엄브리지 옆 강물 위에 바지선이 떠 있고 바지선 위에 3층 건물 높이의 조명이 켜진 정육면체 구조물이 놓여있었는데, 그 구조물 사방에 그림이 있었다. 바로 한국전쟁으로 고향과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기억을 담은 ‘집으로 가는 길’ 그림 500장이었다. 런던의 대표적 문화행사인 ‘토탈리 템스’에서 강익중을 초대해 전시를 연 것이다. 전쟁의 아픔을 상기시킨 그 그림들은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청주시립미술관 2층, 실향민들의 그림 앞에서 나는 나의 집을 기억하는 그림을 그린다면 어떤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래도 있다. 서울시 종로구 혜화동에 살던 어린 시절, 안마당이 있던 한옥과 여름날 아이스케키를 외치며 남자아이가 올라오던 골목길, 그네를 타면 중학교 마당이 보이던 것도 생각난다. 시골 외갓집 동네도 윗집 아랫집 우물가까지 기억 속에 그대로 있다. 청주에서는 몇 차례 이사했지만, 그래도 살았던 집집마다 골목마다 기억을 떠올려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어떨까. 국민 60%가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이 아이들이 먼 훗날 어른이 되었을 때 자신이 살던 집과 마을을 그리라면 무엇을 그릴까. 규격화된 아파트 내부, 밖으로 나가면 서울이나 지방이나 구분할 수 없이 똑같이 생긴 아파트 빌딩 숲. 자동차가 다니는 넓은 도로, 어느 것이 우리 동네이고 우리 집인지 변별력이 있을까.
골목길의 추억도, 산과 들판을 뛰어다니며 느끼는 정서도, 이웃집에 대한 정겨움과 마당과 화단을 가져보지 못한 우리 아이들에게 훗날 ‘집으로 가는 길’은 어쩌면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받아야만 찾아갈 수 있는 집이 될지도 모른다.
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했던 몽골제국이 망하는 데는 150년이 걸렸고, 로마제국은 망하는데 천 년이 걸렸다. 두 나라의 차이가 무엇일까. 몽골은 유목민으로 정복지를 확장하는 데만 전념한 데 비해 로마는 가는 곳마다 콜로세움 같은 원형경기장을 세우면서 로마의 문화를 만들었다. 그것이 얼마나 대단했으면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생기겠는가.
집은 문화의 발생지다. 특히 성장기에 집이나 마을에서 추억이나 문화를 얻지 못한다면 집은 단지 숙식을 위한 공간에 불과하다. 어차피 아파트가 주거생활의 대세가 된 현재 예전처럼 모두 주택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추억을 만들고 문화를 향유하는 공유공간을 늘려야 한다. 공원과 산책길, 도서관, 미술관, 공연장, 커뮤니티 공간들이 아파트 숲 틈새에 작은 옹달샘처럼 들어차야 한다. 그렇게 되면 저마다 ‘집으로 가고 싶은’ 그리움이 생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