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재생사회적협동조합 사무장 유성현
[동양일보]지난해는 성안동 동네기록관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첫해로 성안, 남주동을 주민분들의 인터뷰를 통해 단행본으로 엮는 작업을 하였다. 처음엔 주민들의 인터뷰와 소장하고 있는 오랜 기억이 담긴 사진으로 책을 만들어 잊혀가는 동네의 모습을 담고자 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과 달랐다. 바쁜 일상 속에서 사진 한 장 남기기도 쉽지 않았던 우리 이웃들의 모습을 보며, 아쉬움이 컸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의 만남이 우리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주었다. 성안동 동네기록관은 청주시웨딩허브센터를 거점 공간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그중 2층을 전시실로 사용하고 있다. 그곳에서 ‘어반스케치’라는 단체의 작품을 만난 것이다.
그들의 그림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우리 동네를 그림으로 기록하면 어떨까?”
사진과는 또 다른 매력, 각자의 눈으로 바라본 동네의 모습이 얼마나 특별할지 상상해 보았다.
이 아이디어를 주민들과 나누었을 때, 모두가 흔쾌히 동의해 주셨다. 우리 이웃들의 기억 속 이야기, 옛 모습, 그리고 변화된 현재를 그림으로 담아내는 것. 처음엔 그림을 그려본 적 없는 분들이 대부분이라 걱정도 됐지만, 동네에 대한 애정이 우리의 펜을 움직이게 했다.
교육이 진행될수록 주민들의 실력은 눈에 띄게 늘어갔고, 성취감과 함께 열정도 커졌다. 1층 커피숍, 2층 전시실, 3층 교육관으로 이루어진 우리의 거점 공간은 이 프로젝트의 요람이 되었다. 이곳에서 주민들은 그림을 배우고, 회의하며 동네기록관에 담길 따뜻한 이야기들을 공유하였다.
2024년, 우리는 동네기록관 2년 차를 맞이했다. 첫해에 사람을 기록했다면, 이번엔 동네 곳곳의 골목을 기록해 보기로 하였다. 이 아이디어는 한 주민분이 자신이 살았던 곳을 직접 그림으로 표현해 주셨을 때 느낀 감동에서 비롯되었다. 옛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분들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 이것이 우리의 새로운 목표이다.
6·25 이후 이곳에 정착하신 1세대 분들은 대부분 돌아가시고, 2세대 분들도 80세, 90세가 되어 이제 30% 정도만 남아 계신다.
우리는 이분들로부터 1세대의 이야기와 이 거리의 전성기 모습을 듣고, 기록으로 남길 계획이다. 현재 진행 중인 도시 계획으로 일부 구역이 철거되고 새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오래된 풍경들이 사라져가고 있기때문에 더욱 의미 있는 프로젝트이다. 이에 우리는 조급한 마음으로, 하지만 정성을 다해 기록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히 과거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동네에 소중한 기록을 남기는 동시에 주민들에게 골목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기회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동네에 대한 애정이 더욱 깊어지고, 주민들의 기록 활동이 조용했던 동네에 새로운 활력을 주길 기대하고 있다. 각자의 기억과 감정, 그리고 애정을 담아내는 작업을 하며 때로는 서툴지만, 정성 가득한 붓질 하나하나로 우리 동네의 역사를 새롭게 써 내려가고 있다.
우리의 그림과 이야기가 모여 아름다운 한 권의 책이 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