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시인, 시집 『기쁨의 총회』 출간
나의 걸음은 얼마나 작(으)냐, 주천강가에서 (목놓아) 쎄게 울지 않고 푸념이더냐
어머니를 아는 체 안 하고 그냥 지나친다. 길가에, 한길
광화문 앞에 어머니가 있을 리 없다. 아는 척하면 큰일날 것 같은 예감이더냐
어머니가 마당을 벗어나 풀을 뽑고 있다 나는 그냥 지나쳤다 아는 척하면 큰일난다.
집 안에 있는 어머니를 못 보게 되었을 때,
자주 광화문 밖에 나간다. 마당 바깥으로 벗어나 풀을 뽑아본다. 하늘에 잿빛 태양, 있는 둥 마는 둥 태양이 내 소관 아니올시다. 어머니가 집 안에서 영영 나타나지 않는다.
-시 ⌜어머니가 집 안에서 영영 나타나지 않는다⌟ 전문
예술가 인간은 귀가하지 않는 자 길을 잃는 자 돌아가고 싶어도 너무 멀리 온 자. 많은 길이 멈추면
다시 집을 짓고. 다시 떠나는 자 돌아갈 길을 영영 잊은 자 행성이 집인 자 영원한 집이 아니라, 영원한 행성이 아니어도
다시 집을 짓는 자 다시 사랑하고 다시 목메어 사랑하고 시간 맞춰 노년 장년 청년 유년 다시 떠나는 자
앞문으로 들어가 앞문으로 나오는, (노동의) 영원한 반복
독수리가 지치고 까마귀 부엉이 앵무새, 다시 독수리가 지쳤을 때
그는 나무 위에 오른다. 바위에 오른다, 그가 돌아다닌 길이다 그가 떠나고 도착한 길이다.
행성 일곱 바퀴까지에 도달했다.
햇볕과 질량과 중력이 예술가의 우군友軍,
플러스와 마이너스 전하까지 도달했다.
제로를 확인했고 그는 긴 숨을 쉬었다. 떠나고 떠나고 떠나고 돌아온 자의 웃음, 깊고 푸른 꿈이었다
한 무리의 예술가 사람들이 그 뒤에서
다시 떠나고 다시 도착하는 일이 벌어졌다
-시 ⌜제로에 도달한 예술가⌟ 전문
죽은 자로 태어나서 죽은 자로 죽는다/ 전염시키지 마라./ 혼자 숨어 지내라.// 너에겐 천형天刑이었다. 너는 전멸했다/ 숨어 지내다 죽는 것이 나았다. 소리 나오게 하지 마라
-시「죽은 병사를 위한 노래」일부
박찬일 시인의 10번째 시집 『기쁨의 총회』가 도서출판 예술가에서 출간됐다. 이번 시집은 1부 기쁨에 대하여, 2부 집을 위하여, 3부 만원이 인생인 인생, 4부 자본 사거리, 5부 월현리, 6부 소설 읽었던 일, 7부 80~20%로 구성됐으며 ‘죽은 병사를 위한 노래’ 외 95편의 시를 수록하고 있다.
박 시인은 『기쁨의 총회』는 7년만의 시집이다. 그간 횡성의 월현리로 거처를 옮겼다. 농사는 못 짓고 반성을 할 줄 아는 듯 하루 종일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인생 과학 우주 죽음에 전념한다. 전업시인은 과분하고, 전업생각자로 살고 있다. 부끄럽다. 『기쁨의 총회』는 그간의 기록이다. 세상에 대한, 자아 인류 우주 투쟁 등에 대한 기록이다. 고맙다, 건강에 대해 고맙고, 이만큼 물러난 삶을 준 여건에 고맙고, 존재 모두들에 고맙다. 이 시집을 그 존재 모두에게 바친다.”고 출간 소감을 전했다.
이어 “파국이 임박했다. 2014년 트럼프 당선과 브렉시트를 기점으로 글로벌 평화가 가면을 벗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상극相剋의 시대에, 베스트팔렌 국가평화주의의 파괴, 만국의 만국에 대한 상극의 시대에 돌입했다. 중동, 우크라이나 전선, 동아시아 전선 등이 파국을 재촉한다. 지구 온난화? 무슨 뜻인가. 그전에 ‘파국’”이라며 “시집 『기쁨의 총회』 말미의 시詩 ‘지리학자 재러드 다이아몬드’에서 시인을 110원의 값어치라고 했다. 시인들의 말이 값이 없어진 시대다. 시인들이 침묵한다. 불길하다”고 현 시대상에 대한 우려를 내비쳤다.
박찬일(68·사진) 시인은 연세대에서 독문학을 전공하고 동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카셀대학에서 수학(박사후과정, 1996-1998), 전 추계예술대 교수를 역임했다.
시집으로 『화장실에서 욕하는 자들』, 『나비를 보는 고통』, 『나는 푸른 트럭을 탔다』, 『모자나무』, 『하나님과 함께 고릴라와 함께 삼손과 데릴라와 함께 나타사와 함께』, 『인류』, 『「북극곰」수정본』, 『중앙SUNDAY-서울 1』, 『아버지 형이상학』 등이 있다.
시론집과 연구서로 『시를 말하다』, 『멜랑콜리커들』, 『시간 있는 아침』, 『정당화의 철학. 니체. ‘비극의 탄생’』, 『시대정신과 인문비평』, 『독일 대도시시 연구』, 『브레히트 시의 이해』등이 출간 됐다.
최근 주요 에세이로 「동료 피조물들의 민주주의」, 「‘존재-인간-론’에서 ‘존재-사물-론’으로의 전회」, 「의미장 존재론:‘세계 존재’의 불가능성」, 「(우리가)통 안의 존재자라고?」, 「세계는 왜 존재하(지 않)는가??」, 「최종 이론-모든 것의 이론?」, 「예술의 종말?(헤겔, 보이스, 단토, 니체, 마르쿠제)」 등이 있다.
젊은시인상, 박인환문학상, 편운문학상, 유심작품상, 이상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전염병, 전쟁, 기후 재난, 경기 침체, 사회 불안정 등으로 우울이 전혀 새롭지 않은 시대에 시집 기쁨의 총회가 다소나마 공감을 낳고 상처 뿐인 이들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도복희 기자 phusys2008@dy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