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선 동양일보 주필

유영선 동양일보 주필

[동양일보 유영선 기자]월요일 아침 다니엘은 공원 입구에서 안내문을 보았다. 안내문엔 이렇게 적혀있었다.

‘공원에서 시를 만나요. 일요일 6시.’

다니엘은 시가 무엇인 지를 알기 위해 매일 공원엘 갔다.

월요일에 만난 거미는 “시는 아침이슬이 반짝이는 것”이라고 했고, 화요일에 만난 청설모는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것”, 수요일에 만난 다람쥐는 “오래된 돌담이 둘러싼 창문 많은 집”이라고 했다. 또 목요일에 만난 개구리는 “시는 시원한 연못에 뛰어드는 것”이라고 했고, 금요일에 만난 거북이는 “따끈따끈한 햇볕에 달궈진 모래밭”, 토요일에 만난 귀뚜라미는 “하루가 저물 무렵의 노래”라고 했다. 그리고 밤에 만난 부엉이는 “나뭇가지 사이로 반짝이는 별, 풀밭의 달빛, 어디든 데려다주는 고요한 날개 같은 것”이라고 했다. 일요일 오후 집으로 돌아오던 다니엘은 연못에 비친 노을을 보며 그것이 ‘시’ 같다고 생각을 한다. 미가 아처의 그림책 <다니엘이 시를 만난 날>의 줄거리다.

지난 주 <시란 무엇인가>라는 스테디셀러를 쓴 원로시인(유종호)댁을 방문했다.

말랑말랑한 에세이도 아니고 스토리에 푹 빠지는 소설책도 아닌 딱딱한 문학이론서가 출판한 지 30년이 되었는데도 27쇄를 찍을 정도로 많이 팔리고, 독자들이 팬 레터를 보내올 정도로 사랑을 받는 이유가 궁금했다.

이 책은 ‘시란 무엇인가’란 물음에 대해 직설적인 답은 제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책을 읽다 보면 시를 보는 눈이 길러지고 시를 이해하고 좋아하게 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 시인에게 ‘주체적 독자’에 대해 물었다.

“시를 공부한다는 대학생들에게 물어봤어요. 어떤 시를 좋아하느냐고. 대개 김수영 시를 좋아한다고 말해요. 그러면 좋아하는 구절을 외어봐라, 왜 좋으냐, 물으면 대답을 못해요. 남들이 좋다고 하니까 그냥 좋은 거지, 스스로 좋은 점을 찾은 것이 아니거든요. 우리 문학교육의 실패예요. 교과서에 실렸으니까, 사화집에 실렸으니까, 교사나 비평가의 영향력이 곁들여진 것이죠. 적정한 향수능력과 감식력이 배양됐다면 주체적으로 시를 취사선택할 수 있고, 그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지요. 그런 독자가 바로 주체적 독자입니다.”

주체적 독자가 되기 위해선 자신의 감수성을 길러야 한다. 자신없이 대세와 풍문과 눈치에 의존해 시를 읽으면 시를 보는 눈이 길러지지 않는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많이 읽는 것이 첩경이고, 또 괜찮은 시를 접하는 것이 중요하다.

직접 시를 읽을 시간이 부족할 때는 좋은 시를 듣는 것도 좋다. 그런 면에서 시 낭송은 주체적 독자로서의 감수성을 높이기 위한 좋은 기회가 된다. 옛날 로마에서는 문예애호가들이 자기 집에 아우디토리움(auditorium)이라는 낭독회장을 만들어 놓고 시를 비롯한 문학작품을 낭독하는 취미가 있었다. 전문적으로 낭독을 하는 집사를 고용하기도 했지만, 황제나 대정치가들이 스스로 낭독을 하기도 했다.

가을 들어 두 번째 특별한 공간에서 시를 만나는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 9월엔 청주시립미술관을 찾아 청주출신의 세계적인 화가 강익중의 작품 전시 공간에서 강익중 시 ‘고향이 워디여’를 시민들과 함께 낭송했고, 오늘 오후(10월11일)엔, 충북도청의 옥상 ‘하늘정원’에서 도시 위로 내리는 노을을 보며 시낭송회를 연다. 미술관의 시 낭송이나,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옥상정원에서 시를 낭송하는 것은 특별한 장소의 분위기가 주는 느낌과 시가 주는 감동 때문에 설렘과 행복감이 배가된다.

몇 년 전 미국에 사는 친구의 딸 결혼식에 초대받아 뉴욕 맨해튼의 록펠러 빌딩 옥상에서 열린 결혼식에 참석했었다. 늦은 오후 햇빛이 잦아드는 도시를 내려다보며 신부 입장을 지켜보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낯선 공간이 준 특별한 감성때문이리라.

유종호 시인은 한국의 대표적인 문학평론가이자 뛰어난 문장가이지만 나이 들며 긴 글보다 시를 많이 쓴다고 했다. 그리고 늘 시를 왼다고 했다. 시를 많이 읽다 보니 저절로 외어져 평생 습관이 된 것이라고 했다. 좋은 시를 만나려면 평소 시를 가까이 해야 한다. 이 가을엔 주체적 독자로 시를 만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다니엘처럼.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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